한국 근대에서 ‘국민’의 출현 방식 – 당대비평 특별호, 탈영자들의 기념비(2003) 중에서





<TD style="PADDING-BOTTOM: 0px; LINE-HEIGHT: 1.5em; MARGIN: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COLOR: rgb(51,51,51); FONT-SIZE: 12px; VERTICAL-ALIGN: top; WORD-BREAK: break-all; PADDING-TOP: 0px" align=left><A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COLOR: black; FONT-WEIGHT: normal; TEXT-DECORATION: none" class=aladdin_title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982407&ttbkey=ttbpanic822253001&COPYPaper=1">탈영자들의 기념비</A> – <IMG style="PADDING-BOTTOM: 0px; BORDER-RIGHT-WIDTH: 0px; MARGIN: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BORDER-TOP-WIDTH: 0px; BORDER-BOTTOM-WIDTH: 0px; BORDER-LEFT-WIDTH: 0px; PADDING-TOP: 0px" border=0 alt=10점 src="http://image.aladin.co.kr/img/common/star_s10.gif">
강수돌, 박노자, 권명아, 김두식 외 지음/생각의나무</TD>
<IMG style="PADDING-BOTTOM: 0px; BORDER-RIGHT-WIDTH: 0px; MARGIN: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BORDER-TOP-WIDTH: 0px; BORDER-BOTTOM-WIDTH: 0px; BORDER-LEFT-WIDTH: 0px; PADDING-TOP: 0px" border=0 alt=""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0/98/cover/8984982407_1.gif">

『탈영자들의 기념비』에 나왔던 신형기의 해석이 눈을 끈다. ‘용해’와 ‘귀속’. 모든 국민은 ‘민족의 번영’이라는 서사로 빨려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서 개별 인간들의 차이와 위계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이택광 같은 경우 ‘욕망의 평등주의’라는 말로 한국사회를 설명하는데, 그러한 방식의 진단은 그러한 ‘평등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했던 모든 ‘배제’와 ‘억압’을 파악하지 못한다. 지금의 ‘우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강력했던 ‘평등주의’의 서사 밑에서 스멀스멀 작동했던 담론과 훈육의 메커니즘, 그리고 그에 대항하여 싸웠지만 패배했던 모든 ‘탈영자’들의 기억을 복권시킬 필요가 있다. 국민은 그 지점에서 출현했고, 이러한 여러가지 역동성을 감안할 때 지금의 ‘국민’은 불안한 토대 안에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의 포착은 ‘국민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이는 단순히 ‘국가주의’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명명을 필요로 한다. 악마화된 개념이 아니라, 그 안의 ‘저항점’들을, 그리고 그 ‘저항점’들을 ‘용해’시키고 ‘귀속’시켰던 메커니즘을 동시에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000000 size=3 face=Gulim><SPAN style="LINE-HEIGHT: normal" class=Apple-style-span>용해는 귀속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조건일 것이다. 개별성과 차이가 지워짐으로써 하나로 불리워지고, 하나의 화법 이외에 다른 것을 수용하지 않는 단성주의가 관철될 때 귀속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용해의 경험으로서 4·19는 국민에의 귀속을 가속시킨 기점이었음이 분명하다(p.62).</p>

</SPAN></SPAN></FONT>용해와 귀속의 메커니즘은 이탈자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하나로 통합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이란 배제가 불식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사실 통합의 이면이 곧 배제였다. 배제의 공포 속에서 귀속의 욕구는 거의 무의식적인 것이 된다. 더구나 불의에 항거한다든지 민족과 국가의 부름에 응하는 식의 도덕화는 귀속을 마땅하고 자랑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열광적 최면, 혹은 도취의 상태는 흔히 미성숙하거나 소외된 계층에서 더욱 격렬하게 나타날 수 있었다(p.64).


구두닦이와 같은 ‘돌만이’는 참여자이면서 이탈자이고 용해됨으로써 배제되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전유되었고 번영을 바라는 강력한 국가주의 안으로 수용되고 만 것이다. 누구도 이탈자를 조명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탈자들은 없었기 때문이다(p.65).<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000000 size=3 face=Gulim><SPAN style="LINE-HEIGHT: normal" class=Apple-style-span> </SPAN></FONT></BLOCKQU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