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말하는 변호사의 글쓰기 – 금태섭, “확신의 함정”(2011)


확신의 함정 – 10점
금태섭 지음/한겨레출판
# 나는 법은 잘 모른다. 기껏해야 학부 때 ‘헌법학 원론’, ‘민법 총칙’, ‘법철학'(이건 아감벤-슈미트 때문에) 정도가 전부이고, 기억나는 것은 중간-기말 고사 때 ‘법대 시험지’ 쓰는 법을 몰라서 헤매었던 것 정도이다. 그 이후에도 그런 방식으로 글을 써본 적도, 말을 해 본 적도 없다. 그냥 그랬다. 친구가 ‘사회과학의 경영학’이 바로 법학이며 나 역시 그런 법학에 대해 관심을 놓으면 안 되고, 법을 잘 알아야 목구멍에 밥이 들어간다고 이야기하곤 했었지만. 역시..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법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
책의 저자 금태섭은 누가봐도 ‘엘리트’로 시작한 사람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 20대 중반에는 사시에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20대 후반에 초임 검사라고 했으니). 그런 그가 이런 글을 쓴 맥락은 챙겨볼 필요가 있다. 그가 한겨레에 썼던 ‘수사받는 법’ 칼럼 때문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말이다. 그는 현직 검사 시절에 검찰총장에게 경고를 받기도 했던 이력이 있다. 그는 그러한 위치에서 가장 형사사건 관련해서는 ‘진보적’인 위치의 변호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어느 순간부터 그가 쓰는 칼럼들도 인기 있는 것이 되었다. 그건 아무래도 그의 독특한 이력 덕택일 뿐이다. 이 책은 칼럼을 묶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그의 장점들이 살아난다.
# 이 책은 사형제도, 체벌, 성매매-성노동 논쟁, 간통죄 등. 현재의 첨예하게 쟁점별로 벌어지는 논쟁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이는 잘 읽히며 읽고나면 ‘교양’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뿌듯해 할 수 있다. 금태섭이 내놓는 참고문헌(주로 문학)을 꿰어서 다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수 있겠다. 금태섭은 책의 내용을 봐서는 분명 ‘교양인’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내가 봐서 책의 내용에 대해 특별히 따질 것은 없어보인다. 외려 ‘온건’하고 평화로워 보이게 쓰는 글쓰기를 통해서 ‘센’ 주장을 하는 방식은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이런 거.
과연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포르노를 없애고 ‘도덕 재무장’을 하면 아동성폭력을 방지할 수 있을까? 혹은 성매매를 단속하지 않았더라면 서울 용산 어린이 성폭력 사건, 혜진 · 예슬 양 사건,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 김수철 사건으로 이어지는 아동성폭행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 만일 가해자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아동성폭력 문제의 0.1%라도 해결된다면 나부터 신상공개에 앞장서겠다. 그러나 아동성폭력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아직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거의 알지 못한다. 이렇게 성급한 처방이 나오는 것은 단지 우리 스스로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일 뿐이다(p.48).
# 게다가 이 책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취하고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옹호하는데다가 그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식적’인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독자는 그의 주장들에 대해 특별한 반박을 하지 않고 빨려들어가게 된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급으로 잘 팔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물론 이러한 말들이 ‘힐난’하자는 건 아니다(난 그럼에도 이 책의 ‘똘레랑스’ 풍 주장 자체는 불편하다). 오히려 나는 반대로 왜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가가 불만이다.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의 경우 저널리스트들 그룹 외에도 여러 ‘진보적’ 에세이스트들의 글들이 굉장히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그나마 사회과학적인 에세이를 쓰는 경우가 점차 줄어드는 것만 같다. 그리고 ‘지적’ 글쓰기를 잘 쓰는 그룹은 읽을 수 없는 글을 쓰기 일쑤이다.

그 난점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으며 공감했다. 그리고 한 동안 읽지 못했던 ‘편한 글’로 된 책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상식적이고 생생하고 구체적인 글쓰기로 마음 움직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