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과 맑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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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 4점
윤소영 지음/공감

간략히 읽고난 두 가지 단상을 쓰는 것이 좋겠다. 이 책에 대한 맑스적 관점에서 구체적인 비판을 하려면 아무래도 그가 말했던 레퍼런스 없이 할 경우 어쨌거나 그의 ‘사도’들에 의해서 난타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p>

1. 과다한 수식의 남발.
맑스의 <자본>에 등장하는 숱한 수식들이 있다. 하지만 그 수식들은 미방(미분방정식)이나 로지스틱스 함수에 대한 이해없이도 이해할 수 있다. 맑스가 설명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소영은 전혀 아무런 수식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다시 한 번 읽어보지만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더 치명적인 난점은 ‘전제’의 이유가 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X라고 전제하고” 혹은 “Y라고 가정하고”라는 말이 너무나 손쉽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저자 당신만 알면 되나? 갑자기 미방이나 로지스틱스 함수를 알아야만 맑스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이건 내 책임일까? </p>

2. 논증의 부재
이 책은 거의 논증하지 않는다. “A의 입장은 B에 의해서 비판된다.” 왜 A가 B에 의해 비판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증은 거의 부재하고, 계속 책을 읽다보면 윤소영의 입장에 따라서 ‘믿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윤소영 자신의 입장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이렇게 ‘공식입장’은 만들어지는가?

3. 자잘한 거
근데 왜 ‘경제학 비판’인가?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고이고이 맑스가 지어준 이름을 맘대로 ‘경제학 비판’이라고 하는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은 상황(이건 과천연구소의 합의일까?)에서 그냥 덥석 받기는 좀 그렇다.

책에 나왔던 숱한 ‘참조’ 중 뒤메닐의 <현대마르크스주의경제학>을 읽고 나서 좀 더 자세한 비평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비평 자체가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최원에 대한 비판문, 그리고 최원의 반비판을 읽고 느낀 점이다.)  김수행의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을 읽고도 보고. 던컨 폴리의 <아담의 오류="">도 보고 할 텐데. 글쎄 더 읽어서 ‘비판’이 가능한 인물일까 싶다. 이 책만 봐서는.. ‘비판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너도 나 만큼 읽었냐?”라는 소리를 들을 것만 같다면 왜일까… </p>

팬심의 부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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