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대한 문화기술지 1 – 공채에 지원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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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생을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나는 낯설게 보일 것만 같다. 어쩌면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듯 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무려 ‘대기업’ 공채에 지원하고 있다. 20개의 이력서를 썼다. 아직 전형이 한참 진행중이라 아무 것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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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

이 질문 앞에서 딱 한 가지의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이가 없어서…”

이에 대해서 누군가는 “그걸 모르고 지금까지 글쟁이로 산 거야?”라고 질문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버티고’ 있었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질문해 보자.

“내가 만약 장교로 군대를 갔다오지 않고, 대학원의 장학금과 국가장학금을 타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글을 쓰고, 책을 쓴다고 난리를 치기는 커녕. 애초에 ‘스펙 5종 세트’를 따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모든 공모에 미친 듯이 참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할 수 없는 말’들의 리스트가 가득차서 1000개에 육박하는 ‘블랙 워드 리스트’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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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장교를 갔다와서 30살까지 버텼고, 간간히 들어오던 과외, 번역, 장학금을 통해서 연애도 하고 얼추 소비생활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소비생활 패턴과 문화적 교류를 맘 편히 할 수 있었던 조건 덕택에 글을 쓸 수도 있었던 거다.

그런데 그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 쯤에서 조금 더 ‘악랄한’ 주문을 하는 누군가가 묻는다.

“그러면 엄마한테 잠깐 기생하면서 버티면 되지 않아?”

여기서 또한 봉착하게 되는 문제는 우리 집에 잉여가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 부모 두 분의 연배가 이미 ‘정년’을 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 나이 58, 남자 나이 62. 이미 그들에게 주어지는 ‘썩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는 없어진지 오래다.

더 이상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더 빼쓰면 당장 가계의 신용도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직전이다.

돈이가 없는 것보다 어쩌면 감당할 수 있는 부채의 총량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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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돈에 펑크가 나기 시작한 건 올 초부터였다. 70만 원의 안정된(?) 과외와 적절할 때 적절히 들어오는 번역, 그리고 여기저기에 기고하면서 들어왔던 돈들 덕택에 살 수가 있었던 것인데 거기서 꼴랑 25만 원짜리 과외 하나가 펑크나면서 생활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돈’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했던 시간이 2005년이었는데 2011년이 되자 돈 이야기를 내가 뱉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 바로 공채를 뚫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