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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신자유주의 탄생에 대한 정치학적 접근이다!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책세상,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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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탄생 – ![]() 장석준 지음/책세상 |
# 불세출의 좌파 이론가 장석준
</span>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장석준은 좌파 정치 이론가다. 민주노동당 시절 그가 몸담았던 진보정치연구소에서 만든 『사회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라는 책이 가졌던 선명성, 그리고 적실성을 읽으면서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장석준을 불러대는 ‘별명’이자 ‘설명’인 ‘불세출의 좌파 이론가’라는 말이 매우 적절해지는 순간이었다.</p>
내가 무릎을 친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크게 보아 한국에는 4가지의 진보진영이 가지고 있는개혁/혁명 노선이 있다고 보면 된다.
4개라고 설명했는데 3개만 이야기한 연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 내가 소개하는 책 『신자유주의의 탄생』 은 정확하게 2~3번 대안이 왜 안 된는지에 대해서 잡아내고 새로운 좌파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1번 NLR: 민족해방혁명은 그 세력의 크기에 비해서 이론적으로 비판할 가치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민족주의를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가에 대해서는 명료한 비평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정책 패키지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의 역사를 꼼꼼히 살펴서 보여준다. 이러한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단언해도 된다.
# 지구 정치 경제, 구조 개혁 좌파
그리고 이러한 전투는 그람시주의자의 입장에 따라서 2가지 차원에서 벌어진다. 첫 번째는 진지전. 두 번째는 전격전. 어떤 시대가 모순에 빠지고 그 다음에는 대안적인 흐름이 나오기 전까지의 교착상태가 발생한다. 그 상황에서 누구든 ‘칼’을 뽑아 단번에 형세를 역전할 수는 없고, 상황을 뒤짚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진지와 참호를 파고 장기전에서 유리한 위치(position)을 선점하는 것이다. 정치의 차원에서는 ‘대중 정치’를 장악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이 구축되었을 때 전격전이 벌어질 수 있고, 때로는 전격전 필요 없이 ‘백기투항’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상황은 국면과 형세에 따라서 달리 전개될 수밖에 없다.
장석준이 살피는 것은 196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의 칠레, 영국,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이다.
196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가 보여주는 상황은 바로 ‘지구 정치 경제’의 지각 변동이다. 달러 본위의 고정환율제가 작동을 멈추고, OPEC(석유수출국기구)가 석유파동을 일으키고, 산업의 이윤율이 격감하여 만성적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벌어지던 시기이다. 그리고 복지국가를 운영하기에 인플레이션을 감당할 만큼의 여력이 없고, 런던의 City를 중심으로 한 금융의 헤게모니가 점점 세지던 상황이다. 요약하자면 일국 단위의 ‘케인스주의적 정책’과 그에 연동된 ‘복지정책’이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우파들의 설명과 같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노동당, 사회당, 사회민주당, 공산당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진보 정당들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당들이 ‘대안’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 ‘대안’은 지금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전혀 다른 것이 바로 ‘구조 개혁 좌파’의 흐름이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구조 개혁 좌파들이 기존의 좌파들과 다른 점은 바로 ‘생산자 민주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 그리고 ‘협동조합‘의 강조였다.
달리 말하자면 기존의 좌파는 국가중심주의적이었고 노조 상층부와 국가, 기업의 협약을 중심했다. 즉 ‘하향식Top-Down’ 방식의 정책 입안과 정책 집행을 했다. 지역(동네local)의 민주주의나, 공장 내부에서의 민주주의, 그리고 지역과 노동조합의 선순환 구조에 대해서 둔감했으며 조직 자체가 가부장적이었다. 구조 개혁 좌파들은 여성주의적 의제, 생태주의적 의제, 협동조합의 의제를 포용해서 기존 좌파의 입장을 혁신하는 신좌파적인 ‘민주주의의 강화‘를 기치로 내걸었던 것이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고객의 요구needs처럼 분화된 노동계급과 소비자들의 욕구를 ‘상향식Bottom-Up’ 방식으로 추려낼 수 있는 탄력적인 지역local의 정치를 작동시킴으로 시민사회와 정당, 국가의 연계를 유기적이면서 동시에 수평적인 방식으로 재편하는 기획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최종적으로는 ‘계급관계의 역전’, 즉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실제 1960년대의 칠레(아옌데), 1970년대의 영국(토니 벤 등), 1980년대의 프랑스(미테랑)에서 구조 개혁 좌파는 광범위한 노동조합과 대중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지구 정치 경제의 변동이 낳은 ‘기회구조’에서 이들은 다른 방식의 대안을 제출했던 것이다. 이는 1940~60년대를 풍미했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구식모델을 예찬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주장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 구조 개혁 좌파의 실패와 신자유주의 ‘대중 자본주의’ 기획의 약진 –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이러한 사건 말고 구조적인 구조 개혁 좌파들의 몰락 원인으로 다른 것도 꼽아볼 수 있겠다.
2)두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일국적 케인스주의에 대한 집착과 국제연대의 부재였다. 여전히 강력한 국가에 의해서 경기부양을 하고 복지를 한 큐에 베풀 수 있다는 관념에서 1960~80년대의 구조 개혁 좌파들은 벗어나지 못했다. 이 점은 한국의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도 취할 수 있는 관점이 될 것이다. 요동치는 금융, 환율과 통화 전쟁의 시대에 구조 개혁 좌파들은 여전히 ‘초국적 케인스주의’, 즉 고정환율제의 로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했던 것은 ‘좌파 정당’끼리의 연대나, 다른 방식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 노동당의 EEC 가입에 대한 반대 흐름과 비슷하게 당시 구조 개혁 좌파들은 일국적인 사회주의 노선의 추구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밖의 세계를 몰랐을 지도 모른다. 유럽 의회를 경험했던 구조 개혁 좌파 출신 바바라 캐슬의 경우 이제 ‘유럽 의회 내부’에서 싸워야 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당시의 좌파들에게 너무나 필요한 말이었다.
즉 지역적regional 차원과 전지구적global 차원의 정치의 구상이 빈곤했던 것이다.
3)마지막은 ‘생활정치’세계에 대한 아이디어의 빈곤이다. 1980년대 런던 시장 켄 리빙스턴의 경우처럼 지자체를 구심점으로 한 좌파의 운동은 1800년대 초반의 ‘길드 사회주의’와 ‘협동조합 운동’ 등과 마찬가지로 가장 좌파에게 역동성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구조 개혁 좌파의 ‘생산 민주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들의 구체적 실천에 대한 아이디어가 당시의 좌파들에게는 별로 없었다. 그나마 지역local 현장으로 들어갔던 좌파들의 정치도 당 전체의 유기족 협조가 없는 상황에서 점차 고사될 수밖에 없었다.
▶ 즉, 케인스주의 시절의 좌파의 ‘오래된 습관’은 남아있고, ‘복잡한 반성'(구조 개혁 좌파 등)이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그것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의 발견은 맹아 단계에서 뿌리 뽑힌 것이다.
# 대안 좌파, ‘녹색 신좌파당’?
이 논쟁에 내가 숟가락을 얹기 싫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중간 통합파’의 이야기는 식상했다. ‘우 통합파’ 중 유시민까지 포괄하자는 흐름은 타협 같았고, 그 중 ‘복지동맹파’는 식상했다. 마지막 ‘좌 통합파’의 아이디어는 대체로 동의되지만 유의미한 세력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전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논쟁 자체가 ‘이슈’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탄생』을 읽고나서 장석준이 생각했던 세계에 대해서는 명확해지고 좀 더 지지하는 마음이 커졌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을 펼칠 ‘장’이 없다는 것인데.. 여기서 우울함에 침잠하게 되는 건 할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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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읽었던 장석준의 글은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1999, 이후)에 나왔던 그의 글이었다. 전반적으로 우울함으로 1990년을 닫으려는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달리</span>「필요한 것은 운동이다 : 90년대 학생운동의 비판적 회고와 전망」이라는 제목의 장석준의 글에는 결기가 서려 있었다. 정확한 내용을 추려놓진 않았지만 요는… “어떻게 싸울지의 문제일 뿐, 싸우냐 마냐의 문제는 아니다!” 정도였던 것 같다. 한 때 NL 출신으로 난데없는 시점에 골수 맑스-레닌주의자가 되었던 내게 장석준의 글은 담배 연기처럼 모호한 방향으로의 이끌림을 추동하기 시작했다.</p>
1)자민투 노선(NLR: 민족해방혁명): 미국의 식민지 권력에 대한 탈피 후(주한미군 철수, SOFA 개정 등), 자주적인 민족통일을 이룩하고 강성대국이 되는 시나리오(민주노동당 주류 + 주체사상파).
2)사회주의 혁명 노선(PDR: 민중민주혁명): 급진적 노동운동을 통하여 총파업 혹은 중대국면에서 선진적 노동자를 통하여 1차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타격을 하는 시나리오(舊 PD, 윤소영 등).
3)사회민주주의 노선: 북구 노르웨이/스웨덴 모델과 독일 사회민주주의 모델, 프랑스 사회당의 모델 등에 착안하여 강력한 국가개입을 통한 누진세와 소득재분배, 복지를 만들어내는 복지동맹형성의 시나리오(복지국가소사이어티).
조중동식 시각에 따르면 위의 3가지 구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진보진영’의 대부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보통 ‘빨갱이’라고 지칭할 때에는 1번 노선과 2번 노선을 지칭하는데 ‘종북 빨갱이’라고 말하면 통상 1번 노선과 김대중/노무현 등의 ‘민주개혁세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3번은 그 전에도 어느 정도의 목소리가 있었지만(예컨대 유아적 형태의 홍세화, 진중권 등의 대학교 1학년용 교양서), 그 세력화가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밈’이라는 출판사와 더불어 ‘복지국가소사이어티’라는 정치를 관통하는 운동이 시작되고 거기에 금융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이자 시사인의 경제주간을 맡고 있는 이종태 등의 이야기와 장하준의 ‘新발전주의’에 대한 언급이 물려서 갑자기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가 진보진영의 강력한 아젠다가 된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장석준이 신자유주의의 탄생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전지구적인 변환’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직전의 좌파의 상태와, 그 교착상태를 풀기 위한 시도로서의 ‘구조 개혁 좌파’와 ‘신자유주의자’들의 전투이다. 달리 말하자면 어떤 사회과학자들의 말처럼 ‘케인스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했을 때 ‘대안 같은 건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의 상황에서 당연히 신자유주의가 등장한 것이 아니고, 좌파의 모순에 대한 나름의 시도가 실패했을 때 급격히 신자유주의자들의 흐름이 승리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 개혁 좌파들의 꿈은 제대로 펼쳐지지 못한 채 사그라들고 만다. 칠레의 아옌데 정권은 미국과 금융자본의 힘을 등에 업은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서 ‘전격전’의 과정을 통해 몰락했다. (마침 쿠데타가 벌어진 날이 9월 11일이다.) 영국 노동당에서는 토니 벤 등의 구조 개혁 좌파들이 IMF 위기가 발발하는 상황에서 숙청되었고 노동당은 대처에게 총선에서 패하고 ‘소수 야당’의 지위로 전락하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미테랑이 끝까지 버티려 했으나 EEC와 EMS의 압박 때문에 구조 개혁 작업을 포기하고, 미테랑은 대통령 연임에 성공하나 내각은 쉬라크를 비롯한 우파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리고 이 틈을 치고 올라온 것이 바로 통화주의를 매개로 해서 등장한 금융자본의 헤게모니를 관철하는 ‘신자유주의 운동’이었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퇴행’이 아니었다. 모두를 ‘국민’이 아닌 ‘주주’로, 그리고 ‘투자자’로 만들어주겠다는 ‘대중 자본주의’라는 혁신적인 구상이었다.
1)먼저 새로 등장하는 전지구적인 지구 정치 경제의 흐름, 즉 ‘금융’과 ‘화폐’에 대한 무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초국적 금융 자본의 온상인 City의 헤게모니를 빼앗지 못했고 결국 미국과 연동된 금융 시스템에 의해 벼락을 맞을 수밖에 없었고 이미 산업-무역을 중시하던 흐름이 해체되어가던 과정에서의 IMF는 신자유주의 솔루션을 강제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경우 미테랑은 ‘강한 프랑’에 대한 집착 때문에 EMS에 의해 호되게 당하게 된다. 재정정책을 통하여 공공정책을 집행하기 위했을 때 강한 프랑 정책은 그들의 뒷덜미를 잡았다. 외환보유고에 대한 미셸 캉드쉬의 ‘구라’도 일조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튕겨져’ 나갈 계획을 하지 못한 한계들은 미테랑으로 하여금 구조 개혁 좌파 CERES의 정책들을 입안할 힘을 얻지 못하게 만들었다.
올 초부터 진행된 진보신당의 ‘통합파’ vs ‘독자파’의 논쟁은 오묘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한 편에는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여기에는 유시민까지 포함하여 진보의 외연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부터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축으로 한 ‘복지동맹파’가 있었다. 다른 한 축에는 ‘독자파’가 있었다. 이 중 한 무리는 NL의 종북 패권주의에 대한 반대 때문에 통합에 반대했고, 또 다른 무리가 있었다면 바로 이들이 대안 좌파를 추구하는 ‘녹색 신좌파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석준은 이 구도를, ‘우 통합파’, ‘중간 통합파’, ‘좌 통합파’라고 지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