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이 보는 정치 그리고 자본주의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 8점
이계안 지음/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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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을 안 건 우석훈 때문(덕택?)이다. 그의 『진보를 꿈꾸는 CEO』 작업을 하던 B와 Y를 알고 있었고, 그 팀의 작업을 지켜볼 수 있었다. 막상 『진보를 꿈꾸는 CEO』를 읽은 건 책이 나오고 1년이 훨씬 지난 올해 10월 달이었다. 책을 늦게 읽었던 이유는 ‘이계안’과 ‘진보’라는 두 가지 단어의 교집합이 무엇일지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진보를 꿈꾸는 CEO』를 읽으면서 몇 가지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이건 아마 내가 안철수의 생각들을 읽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산업민주주의’라는 측면과 ‘복지’라는 측면에 있어서 CEO 출신, 각종 부문의 간부 출신들은 절대로 진보적 입장을 취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계안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파업에 대해 이계안이 택했던 입장이나, 산업 생태계에 대한 입장들이 그러하다. 고용 보장과 수익률 상승에 연동되는 인센티브. 다만 CEO로서 그가 했던 발언 “나는 노조의 입장에 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의 보장은 시장(market)이 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이었다. 다른 한 편 대기업 CEO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지원 및 양성(인큐베이팅)을 통한 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 및 복원성 만들기에 대한 그의 입장도 흥미로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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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꿈꾸는 CEO』가 ‘인터뷰집’이라는 점에서 좀 더 공격적일 수 있고 그것이 주는 매력이 있지만,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는 에세이집이라 또한 다른 지점에서 만족스러운 점을 제공한다. 예컨대 한 획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에 이계안 머릿속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 대한 논리는 ‘우파’한테 한국사회에서 기대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진보’인데 CEO 출신이라서 조선일보 등이 ‘빨갱이’라고 규탄하는 것에서 스텝이 꼬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한다.

공급망이 강력한 산업 내에서 대기업과 협력관계, 소위 갑-을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도 설 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동차, 전자산업처럼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동반해서 살아가야 하는 업종에서 대기업은 협력업체가 간신히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마진만 보장해 준다. 갑과 을의 관계를 수요독점Monopsony(공급독점Monopoly의 반대말)으로 만들어 옴짝달싹 못하는 종속적인 관계로 만들기 때문이다“(p.127).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의 경제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자본력, 정보력, 마케팅력을 가졌고, 반대로 중소기업은 신속하고 유연한 경영 체제라는 상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장점들을 서로 결합하여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적 종속 관계가 수평적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에는 대기업과의 공동 R&D나 동반 해외진출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도 제공해야 한다. 대기업에는 세제상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서 유인하고, 중소기업에는 R&D 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방식이다“(p.131).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확인하는 점은 그가 ‘강하게’ 대기업을 견인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현재 진행되는 한미 FTA의 문제점을 잘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이걸 정치적 아젠다로 만들 것이냐의 질문이다. 그런데 이계안은 이 지점에서 머뭇 거리거나, 혹은 확실한 ‘입론’을 펼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게 내가 발견하는 ‘정치인’ 이계안의 약점인 것 같다. 달리 말해, 현대의 정치와 자본주의를 보는 좋은 ‘눈’은 가졌으나 좋은 ‘다리’와 튼튼한 ‘몸통’을 가졌는지가 의심스럽다.

사교육, 워킹푸어, GWP(Great Work Place: 좋은 일자리 만들기 정책) 등에 대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확인할 수 있지만, 나는 그가 17대 국회의원을 하면서 이러한 이야기들을 적재적소에서 꺼내서 최근 정동영이 보여주는 패기로 밀어붙이는 적을 목격한 적이 없다. 결국 협상자의 위치에 갔을 때 그 정도의 입장들을 꺼낼 수 있다는 것인가? 어딘가 물렀다는 생각을 한다. 이계안은 분명 재무회계적 센스도 있고, 시카고 학파의 우파 경제학의 맹점을 파악하는 혜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치인은 분명 민주개혁-진보-좌파 중 그리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좌파가 집권하더라도 그의 아이디어를 통해서 실질적인 대안 모델을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 까지다.

‘독립적인 진보 정치인’으로서 이계안은 좀 더 치고 나가야할 텐데. 그 센스는 어떻게 발굴 될까? 서울시장이건 아니면 국회의원이건 말이다. 물론 이 대답은 내가 줄 수 있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2.1 연구소의 목소리와 이계안의 좀 더 적극적인 행보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