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부품’들의 역습, 궁색한 ‘기업 제국'([프레시안 북스] – 피터 카펠리의 <부품사회>)

**채용 담당자의 이메일과 대통령의 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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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생활을 하기 싫어서 군대도 미루고 또 미뤘고, 대기업 조직이나 관료사회의 ‘부품’이 되기 싫어서 버티고 버텼던 게 내 20대의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취업을 결심하게 된 것은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매체에 원고를 기고하고, 번역을 하고,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벌어도 월 수익 200만 원이 도무지 가까이 보이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대기업 취업’을 부랴부랴 결심하고 ‘스펙’을 쌓느라 방학 기간에 영어성적을 따고, 취업 시즌이 되자 이런 저런 ‘글쟁이’로서의 스킬을 동원하여 100장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했지만, ‘광탈’에 ‘광탈’이 이어졌고, ‘취업’은 ‘넘사벽’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그 때마다 여러 ‘불합격 안내’ 이메일을 받았는데, 메일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지원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귀하의 훌륭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인원으로 인하여 채용을 진행하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혹은 “훌륭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당사가 요구하는 역량과 상이하여…”

탈락의 아쉬움을 제외하고, 그런 문구를 읽으면서 드는 또 다른 생각은 “내가 능력이 부족한 건가?” “채용 담당자의 ‘훌륭한 역량’이라는 말은 뭐지?”였다. 합격자의 ‘스펙’이 우수한 건지, ‘스토리’가 절절한 건지가 궁금했고, 담당자가 생각하는 ‘훌륭한 역량’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그냥 ‘인사말’을 넘는 뭔가가 있는 실마리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 시간 뉴스 보도에서 대통령은 재계 인사들을 만나면서 한국의 청년실업이 청년들의 ‘눈높이’ 때문에 극복이 되지 않는 다는 취지의 말을 또 한 번 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채용담당자의 말과, 재계인사들과 대통령이 한 말은 서로 같은 이야기의 같은 버전일까? 아니면 서로 진실에 대한 배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궁금했던 그 진실은 대기업에 채용되어 인사담당자로 배치되고 나서 어렴풋이 알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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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과 고용의 위상차이와 인사관리**

피터 카펠리의 <부품사회>(김인수 옮김, 레인메이커 펴냄)는 그의 직업을 고려해 본다면 독특한 저작이라고 볼 수 있다. 온갖 CEO와 대기업 경영진, 컨설턴트들의 요람, Global Top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의 교수, 그리고 다양한 컨설팅 경력. 보통 그런 사람들이 인사관리와 ‘인재’에 관한 책을 낼 때는, ‘새로운 시대의 인재상’에 대한 모습과 거기에 어떻게 많은 ‘도전자’들이 역량을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초장부터 컨설턴트답지 않은, 어쩌면 ‘구닥다리’ 같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카펠리가 <부품사회>를 통해 외치는 이야기는 단순하다. 1)많은 경영자들이 뽑을 만한 ‘인재’가 없다고 타령을 해대지만, 실제로 그들이 바라는 ‘인재’는 갓 학교를 졸업한 신입이 아니고 ‘경력’을 겸비한 신입이다(71%의 한국기업이 그렇다). 2)동시에 많은 기업이 직원들의 ‘역량’을 탓하지만 실제로 기업은 인재를 키워내지 않고 더 싸고 역량을 갖춘 인재를 뽑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3)인재 채용 대신 기존 인력을 ‘짜내’서 ‘비용절감’을 했던 기업들 내부에서 높은 업무강도에 노출된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 대신 이직기회를 엿보게 되고 직무몰입에도 한계를 보여, 실제로는 기업의 이윤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부품사회’는 바로 ‘비용절감’의 대상으로나 간주되는 인재들의 사회를 말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은 고용주 자신이다. 지원자가 차고 넘치는 현실에서 고용주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실무 교육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입사해서 곧바로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직원을 원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이미 그 일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니 지원자들로서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린 셈이다. 이런 상황은 회사와 국가 경제에 피해를 줄 뿐이다.” (15쪽)

요컨대 기업들은 ‘알량한’ 마진을 생각하면서 ‘인재의 성장’에 투자하기보다 계속 싸구려 ‘부품’ 취급하다가 역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만 ‘인재 타령’하며 인사관리의 편리함만 따지는 기업이 문제다.

고용과 노동의 ‘위상’ 문제

그런데 <부품사회>은 이렇게 ‘얕은 수’를 쓰고 있는 기업들의 고용자들을 비판하면서 최종적으로 ‘산학연 협동’을 제안한다.

“학교 교실과 작업 현장을 하나로 묶는 협동 프로그램은 모두에게 효과 만점의 결과를 안겨 준다. 학생들은 교과 내용이 실제로 활용되는 것을 보고 전공에 대한 이해와 지식 습득이 빨라진다. 또 직원과 학생이 함께하는 자리를 통해 서로 혜택을 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회사는 준비된 인재로 새로이 태어난 졸업생들을 맞이하게 된다.”(147쪽)

뭔가 맥이 빠지는 기분이다. 고용문제를 꼬이게 만든 것은 기업인데, 기껏 낸다는 해법이 어쨌거나 정부나 지자체가 세팅한 ‘협동프로그램’ 안에 기업을 들어오게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지점에서 ‘고용’이 목표가 되어버린 2000년대의 ‘국가’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 수 없다. 멀쩡한 이름에 ‘고용’을 붙여,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하는 ‘노동부’가 ‘고용노동부’가 되었다. 대통령은 어딜 가든 ‘일자리’를 만들자고 난리법석을 떨고 모든 해외순방의 결과에는 꼭 ‘~개의 일자리 창출효과’를 언급한다. 그리고 지자체 단체장들은 각종 ‘산업 클러스터’를 통해 기업을 유치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을 공약의 1번으로 입력한다. ‘사회적 기업’이든 뭐든 언급되는 맥락은 바로 ‘고용 창출’아닌가?

고용의 중요성을 절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쟁점은 ‘누락’된 이야기다. 그건 바로 ‘노동’ 그 자체의 위상이고, ‘노동조합’이 붕괴된 나라에서의 없어진 ‘경영활동’에 대한 ‘브레이크’이다. 노동조합 때문에 구조조정을 빌미로 노동자들을 맘대로 자르지 못하니까 기업은 그들을 교육시켜서 숙련도를 높이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기업문화 활동을 통해 ‘한가족’임을 설파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노조가 약화되니 실적에 대한 문제를 경영진이 아닌 담당자들(노동자들)에게 직접 묻게 된 것이다. 덩달아 고실업이 유지되기 때문에 인사 담당자가 기껏 하는 일이 ‘스펙’에 맞춰 지원자들의 합격/불합격 여부나 프로그램으로 뽑는 게 될 수밖에. 그럼에도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하고 싶다”며 지원자들은 몸 달아 있으니 그 ‘고용’이 만들어낼 인간의 모습은 ‘파리 목숨’과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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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담당자의 ‘멘붕’과, 완전히 닫히지 않은 통로**

▲<회사가 우리를 열받게 하는 65가지 이유>(전정주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매일경제신문사 </p>

▲<회사가 우리를 열받게 하는 65가지 이유>(전정주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매일경제신문사

미국의 인사관련(HR) 직종의 ‘인사이더’가 들려주는 투박한 상황진단은 고강도 노동을 수행하면서도 ‘알아서’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 업무 역량을 키워야만 하는 체계의 문제점이 ‘사측’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비판이 여전히 유용한 ‘대안적 경제체제’의 실체를 만들지 못한 것처럼, 피터 카펠리의 ‘산학연 협동체제’의 모습 역시 노동의 ‘위상’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별로 ‘대안적’이진 않은 것 같다.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채용담당자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원자의 ‘훌륭한 역량’이라는 말을 불합격 통보 메일에서 날리는 채용 담당자의 말에서 난 ‘일말의 양심’을 느낀다. 물론 그 표현 자체는 이미 상투적이고 어떤 가시적인 대안을 만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이 나쁘지 않게 들리는 것은 채용 담당자의 ‘멘붕’(멘탈붕괴)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누가 더 우수한지 모르니 그냥 스펙 진단 프로그램으로 돌렸고, 사실 당신의 능력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다”며 횡설수설하는 담당자의 목소리 말이다. 내게는 ‘눈높이’를 낮추지 않아 ‘고용가능성’(일정 역량이 되어 고용/채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떨어뜨려 청년실업을 만든다며 애먼 ‘취준생’을 ‘죄악시’하는 경영자들이나 정부 고위 인사의 헛소리보다는, 담당자의 ‘멘붕’이 훨씬 현실적이고 양심적인 것만 같다.

살펴보면 한국 노동체제의 경우 여전히 틈새가 많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조직’처럼 보이는 삼성이 마치 한국 대기업의 표준 조직문화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제조대기업’인 나머지 대기업들은 여전히 예전의 1998년 이전 ‘일본식 경영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도요타를 통해 1990년대 도입된 ‘카이젠’(개선) 문화와 미세관리, 현장중심적 혁신 문화는 여전히 제조업에 남아있고, 그 배경에서 직원들의 직무역량강화 교육은 미국보다 훨씬 강조되고 있는 편이다. 또한 정규직 노동조합과 50대로 접어드는 386세대 사무직 중간관리자들은 ‘임금피크’와 ‘정년연장’을 협상하기도 하고, 동시에 ‘임금피크’ 무력화를 진행하기도 한다. 아직 노동자 한 명의 해고가 쉽지 않은 대기업 조직도 분명 존재한다.

고용안정과 임금이 양극화되는 경향, 신규채용을 하도급형태로 전환하는 경향은 ‘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경영전략’의 반영이며 현재의 노동-자본간 권력관계의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힘’이 없어서, 구조적 제약이라는 이유 때문에 ‘청년실업’과 ‘비정규직화’의 문제가 벌어진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연대’라는 기준을 놓는다면 해볼 만한 구석이 분명 있다. 물론 그 ‘연대’는 개별 기업단위에서의 ‘협상’과는 다른 ‘투쟁’과 ‘사회적 협약’의 장에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기대’를 말하고 싶다. 바로 사무직 노동자의 ‘문화기술지’(ethnography)이다. 생산직의 ‘현장’의 블랙박스는 어느 정도 풀려있고 공유가 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적 사무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무직들의 업무와 일, 자기계발의 자세한 내용은 컨설턴트의 입으로 ‘영업 활동’에만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각종 경제학이나 통계학의 방법론을 동원한 구조적 진단이나 심리학적 ‘사고실험’ 정도가 공개되어 있을 따름이다. 바바라 에런라이크나 나오미 클라인 같은 톤으로 ‘내부’에서 이러한 진단들을 드러내거나 뒤집는 조직문화의 문화기술지, 그게 조만간 나올지 궁금하다. 엔지니어들의 목소리나, 일반 관리직 직장인의 목소리랄지.

이미 ‘개념’을 갖고 있는 ‘스토리텔링’에 능한 ‘가방끈’ 긴 인력들이 현대조직에 들어가 있지 않나. 고학력이 고용, 고임금, 출세를 보장하지도 않아 더 이상 젠 체 못 하고 함께 같이 무너지기 시작한 마당에 말이다. 가능하다면 그런 작업들에 함께 참여하고 싶은 심정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 지음, 개마고원 펴냄)</strong>
실업과 취업 경쟁 덕택에 기업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이미 지레 겁을 먹어버린 청년세대가 어떻게 ‘내면화’되었는지에 대한 실태보고서. </p>


<회사가 우리를 열받게 하는 65가지 이유>(전정주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사실은 이러합니다. 이게 여전히 한국 회사이고, 한국 조직입니다. 우리 주위에 삼성만 있는 건 아니죠. 이 책은 구입보단 빌려보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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