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업의 엔지니어 문화를 이야기하려는 이유 – 서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지난해 분석한 국가별 해양플랜트 기술 수준을 보면 미국의 수준을 100으로 정의했을 때 유럽연합(EU)은 99.5, 일본 83.5인 반면 우리나라는 79.8에 그쳤다.

특히 중국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기술 수준이 2011년 66에서 지난해 69로 상승하는 등 우리나라 기술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해양플랜트 내 배관재, 전기장치, 계장설비, 안전장치 등 주요 기자재 국산화율도 20~30%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일반 조선 부문의 기자재 국산화율인 80~90%보다 크게 낮다. 따라서 수익성이 높은 설계, 설치, 시공관리, 해체, 운영·유지보수 등 서비스 사업을 육성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한은 경남본부는 밝혔다.

이를 위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조선해양플랜트 연구소 분원 등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기술개발 능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2014년 7월 15일, “국내 조선사 해양플랜트 수주 속빈 강정”)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엔지니어의 문화’이다. 왜 엔지니어의 문화일까?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의 중공업이라는 산업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엔지니어링 역량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이야기되지 않는 엔지니어링 역량의 기저에 ‘엔지니어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기사는 한국 조선업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07-8년 호황 이후 발주량이 줄어든 상선 선박(LNG 운반선, 초대형 유조선, 컨테이너선, 벌크선, LPG 운반선, 페리선 등 자체로 이동할 수 있는 엔진을 가진 Vessel)을 대체하여 조선업계는 해양플랜트(드릴십, FPSO, Pipe-laying Vessel, Fixed Platform, SEMI-RIG 등 석유/LNG 시추 장비 일체)를 공격적으로 수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단히 말하면 6-7년 후인 지금 덫에 걸려버렸다. 조선업 호황기의 10% 이상의 매출이익은 커녕, 2014년의 조선3사 실적은 (-)로 돌아서버렸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기다리고 있거나,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 치거나. 어쨌거나 현재 상황에서는 아무런 답도 없는 상황이다.

실제 현업의 톤으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일단 자재부터 펑크가 난다. 자재는 국산자재가 아니고 고객이 바라는 외자재를 쓰다보니 ‘슈퍼을’ 벤더들에게 QCD(Quality, Cost, Delivery: 품질, 비용, 납기) 확보도 못하고 농락당하기 일쑤이다. 조달이 꼬이는 와중 공정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계약시 잡아놨던 납기일은 Lead Time의 증가와 생산 단계에서의 고전 때문에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 7월에 설치되기로 한 플랫폼 작업이 9월에 끝나버려 설치광구의 날씨가 추워져버려 조선소에서 1년을 나고 다음 해에 배달(?)되는 일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자동차처럼 완성된 부품을 고객이 바로 받아보는 것이 아닌, 생산현장에서 직접 고객사의 Site Manager들이 감리를 하고 있는 상황(건설업과 유사하게도)에서 입소문도 통제가 안 되기 일쑤다. 조선 3사는 신용등급을 걱정하는 동시에 현장에서 ‘갑’인 글로벌 선사와 에너지 기업들의 눈치를 보느라 매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점 지적은 다양한데, 가장 크게 언급되는 사항은 1) 저가수주다. 조선 3사와 싱가폴 조선소 등이 덤벼들어 되도 안 되는 견적을 내고 출혈경쟁 끝에 수주를 따내다보니 실제 견적가 자체가 -15% 내외로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생산에서 만회하면 돼”가 조선소 영업담당자들의 이야기인데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 공식이 먹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공사를 시작하면서 “생산에서의 만화” 공식이 깨져버렸다. ‘악전고투’라는 낱말이 조선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이유도 추후의 포스팅에서 설명하겠다.)

두 번째 문제점은 2) 기술력의 부족이다. 이 기술력은 다양한 범주를 포함하는데, 먼저 생산기술(건조능력)이 있을 것이다. 보통 조선업의 조립작업은 강재를 절단하고 가공하여 소규모의 블록으로 나누어 만든 후, 점차 그 블록들을 붙여가면서 선체를 만들고 거기에 선박의 운항을 위해 필요한 의장재(equipments)를 탑재하는 방식인데, 공기 단축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의장재를 ‘미리’ 선행 단계에서 다는 것이다. 한국의 조선업이 흥하던 시기 조선업체들의 강점은 ‘선행의장’, ‘선행도장’, ‘선행탑재’가 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같은 선종을 한 꺼번에 여러 척씩 건조하면서 익히는 ‘반복숙달’에서 갖게된 강점이었으나, 최근의 해양플랜트는 그 장점을 없애버렸다. 같은 플랜트가 없다. 다른 플랜트를 건조하면서 가졌던 노하우를 가질 수가 없다. 결국 허우적대고, 또 허우적대고, 또 허우적대면서 이익은 소멸해 버린다.

하지만 생산기술의 문제는 사실 독립변수가 아니다. 더 근본적이고 시초적인 문제는 설계기술과  RnD의 능력에 달려있다. 잘 설계된 도면, 제대로 산정된 견적, 제대로 된 계약(이 부분은 법적이기도 하다)이 있다면 후행단계(조달, 생산)에서의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다. 설계의 단계는 통상 기본설계, 구조설계, 상세설계, 의장설계 순으로 진행되는데, 기본설계는 배나 플랜트의 목적과 그에 따라오는 초기 옵션들을 결정한다. 한국 조선업의 장점은 언제나 상세설계 이후의 후행설계였다. 선형이라는 것이 표준적이고, 그 선형을 주문주의 오더에 맞게 ‘조금씩’ 고쳐가는 방식에서 기본설계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후행에서 ‘노련함’을 통하여 주문주의 요구사항을 생산과정에서 반영할 수 있도록 ‘수정도면’을 잘 그리는 것이 포인트였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꼬인 것은 바로 기본설계다. 세상에 같은 플랜트가 없고, ‘표준’이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기본설계가 중요한데, 기본설계 단계를 진행하는 것은 한국의 조선업체나 엔지니어링 업체가 아닌 해외의 엔지니어링 업체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Exxon Mobile이 EPC 플랜트를 발주를 낼 때, 기본설계는 Technip에 내고(Engineering), 그 후의 PC(Procurement-Construction) 발주는 국내 조선사에 내는 식이다. 물론 기본설계 업체와 국내 조선사의 협업이 잘 된다면야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거 없다. 게다가 기본설계에서의 마진이 가장 높고 대부분의 공정을 결정하는데, 그 작업을 한국에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업계의 능력이 있는 데 안 시키는 것이 아니라, 업계 스스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왜 ‘능력’이 없을까? 1) 일단 1차적으로 아무도 안 해봤기 때문에. 그건 업체의 담당자들 이야기다. 안 해보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배우면 된다. 2) 배우고 있는데 잘 안 되는 거라면 ‘아직’ 덜 배운 것이다. 거기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 일까? 3) 마지막 경우는 배운 것과 해본 것의 괴리가 발생한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학문’으로 플랜트 엔지니어링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다루어졌다. 조선공학과가 조선해양공학과가 되었고, 해양플랜트 대학원이 생겨났다. 업체의 기밀이야 파악할 수 없어도, 학문으로서의 플랜트 공법이나 설계기법은 이미 전파되고 있다. ‘모른다’고 말하기에는 굉장히 많은 학부 인력과 석사 이상 졸업자들이 취업을 했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그 ‘무엇’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떻게’ 일을 하고 있나, ‘어떻게’ 생활을 영유하고 있나? 그 질문부터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