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학’이 어쨌다고?

엔지니어링은 미래를 100퍼센트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예측하려 하기보다는 대비를 하려고 한다.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우산을 준비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과학자이기보다는 엔지니어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는 “Scio me nihil scire.”라는 말을 남겼는데, 여기서 scio와 scire는 앞의 과학의 어원에서 나왔던 바로 그 sci-의 변형들이다. 이 말은 “나는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엔지니어인 자전거 수리공들이 택한 방법은 달랐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아한 이론의 세계가 아니라 시행착오Trial-and-Error법이라고 칭해질 수 있는 반복적인 테스트와 끊임없는 실패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경험적 방법이었다((권오상, [노벨상과 수리공]).

 

마침 회귀분석을 위해 코딩 하던 화면이 있어서 얹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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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울렁증만 없다면 복잡할 게 없는 내용이다. 마트에서 임산부 타겟으로 세일을 해보려 하는데 이를 위해 기존에 임산부들이 샀던 아이템을 펼쳐놓고 어떤 아이템(예를 들면 기저귀 등)을 샀을 때 임산부일 확률이 높은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구태여 ‘확률’이라고 한 이유는 100%를 대번에 맞출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임산부로 분류 했는데 아닐 수 있고, 임산부가 아니라고 했는데 임산부일 수도 있다. 임신한 언니를 위해 유아용품을 선물할 수도 있고, 나이가 50이 넘어 임산부가 아니라고 식별했는데 실제 임신한 경우일 수도 있다.

이러한 틀리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내가 적용하는 방식은 유전 알고리즘, 혹은 진화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것이다. 방정식을 예를 들자면, 100×50의 0과 1로 구성된 이진수 행렬이 있을 때 이것들을 조합해서 특정 조건 (기울기 추정시 계수가 +-5를 못넘게 제한)에 맞게 범주 안의 숫자를 때려 넣는 것이다. “때려 넣는 것”. 달리 말하면 특정한 ‘정답’을 전제하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합 중에서 ‘최적’을 달성하는 방식인 셈이다. 이런 ‘최적’은 ‘한 번’에 달성하는 게 아니라 무수한 숫자의 ‘에러’를 교정하면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회귀분석에서는 500번의 시도를 거쳤다. 이 정도면 매우 작은 수준이다. 10분도 안 걸린다. 메커니즘 설명은 나 역시 문송한 처지에 생략한다.)

약간 장황하게 머신러닝을 통해 ‘최적화’를 달성하는 예시를 든 이유는 공학도들이 사고하고 실제 일을 수행하는 방식이 ‘민주주의 정치’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반복적인 토론과 끊임없는 협상 실패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 점진적으로 접점을 찾아 나가는 타협 과정”이라고 이 포스팅의 처음에 언급한 인용을 거의 그대로 따다 정의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치’공학’이라는 말을 통한 비난 역시 ‘공학’에 대한 편견과 ‘정치’에 대한 편협한 사고의 산물이라고 본다.

내가 기억하는 1997년 12월부터 2016년 5월 현재까지의 한국 정치 일정을 살펴 보면, 한국 정치는 ‘옳은 이념’의 부재가 아니라 타협과 협상을 통해 실질적인 정책 목표를 달성해내는 정치’공학’의 부재 상황에서 훼손 당하곤 했다. 특히 ‘옳은 개혁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고 할 때마다 실기에 실기를 거듭했었다.  노무현은 협상하려는 정치인이었으나 ‘시대정신’에 짓눌려 스텝이 꼬이곤 했고, 김대중(이하 DJ)야말로 참 정치인이었으나 그의 세력은 정치9단 총재의 수완을 따라잡지 못했다. ‘BBK검사’ 역할을 했던 정동영의 2007년은 슬프기 짝이 없었고, 매번 ‘벽에다가 소리치듯’ 자기들만 옳았던 ‘깨어있는 시민’들은 동네 목욕탕 인심 하나도 잡지 못해왔다. (김종인을 싫어하고 그가 민주주의를 모른다고 맹비난 했던 이들 중에 누구도 김종인보다 더 많은 의석을 ‘탄핵’ 바람 정도의 흐름 없이 가져오지 못했다. 물론 김종인은 구시대의 사람이고 민주주의의 이념과 절차 모두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임에는 틀림 없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자. DJ는 심지어 ‘인위적 정계개편’을 통해 ‘의원빼가기’도 서슴지 않았던 대통령이었다. 함께 할 수 있으면 오라고 했다. 나는  DJ의 그런 정치’공학’이 전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자민당처럼 보수 여당이 오래 집권하고 야당이 지리멸렬할 경우 각자의 입장과 상관없이 일단 ‘계파’라도 만들어 버티며 자신들의 입법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정치인의 생존술 자체는 비난받을 것이 아니라고 본다. (사실 그렇기에 ‘철새’ 따위의 말은 제한적으로 쓰여야 한다.) 그런 정치인들이 마음 놓고 정책을 가치가 가장 비슷한 집단과 연합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뭐가 나쁜가?  훗날 김성식, 이부영, 김부겸도 다 그런 계기들을 통해 넘어왔던 것이다.

자꾸 ‘가치’에 갇히지 말고 끊임없이 ‘반복적인 토론과 끊임없는 협상, 그리고 협상 실패와 접점찾기’를 하면서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게 어떤가? 자신들의 ‘정책 목표’를 달성해서(policy-seeking)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진짜 공학도들이 어떤 방식으로 ‘최적의 해’를 찾아나가는지 한번쯤은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한다. 알파고가 이세돌도 잡으며 머신러닝의 시대를 열고 있는 마당이다. 심지어 이세돌은 알파고를 만나고 ‘지지 않고’ 있지 않나?

지지 않는다고<figcaption class="wp-caption-text">알파고 만나 득도한 이세돌 9단</figcaption></fig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