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에 대해서.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난 수십명의 주사파와 대학을 다녔다.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그들을 단죄할 수 없다 생각하고 그럴 수 없다 생각한다.(이런 전제를 항상 달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덕택에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 현대사 1,2,3>를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읽어야 했고, <역사 에세이="">를 읽어야 했고, 조국 통일의 당위성과 반미 투쟁으로 귀결되야 함에 대해서 들어야만 했다. 대학 1학년 때 내게 그들은 그래도 생각이 있고, 뭔가 진지한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들은 아무 생각없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고, 토익공부만 죽어라 하는 ’88만원 세대’ 복판의 20대보다도 책을 읽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보던 책만 외울 때까지 읽는다. 그리고 그들은 <한겨레>를 들고 읽고 있지만, 정세판단은 자주파들의 자료, NK발 자료가 아니면 믿지 않는다.

그리고 또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누구보다도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제에 빠져있다. 사실 ‘권력’으로서, ‘권력장치’로서 그들이 그런 측면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없지만, 그것이 가능한 조건은 그들이 ‘대안세력’이 아닌 ‘수권세력’일 때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그들이 그런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제에 빠져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앓고 있는 이들의 운동세력이 아닌, 단순한 대항 체제(NK) 권력과 일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게다가 그들의 문화적 감성이란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들의 투쟁가에는 여전히 반미 항전의 결사적인 태도가 있는데, 문제는 그들이 소환하는 주체가 ‘민족’이라는 것이다. 즐거운 노래들(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우리민족끼리힘을합쳐”, “한결같이”) 또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을 통일’함의 기쁜 정서만이 가능하다. ‘민족’에서 떨어져서는 당장 죽으리라는 가정. 차라리 무색무취해보이고 딱딱한 ‘국가’는 현대적으로라도 보이지만, ‘민족’의 호출은, 바야흐로 나를 3국시대의 고구려 국내성에 데려놓는 기분이다.

내가 구태여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이런 그들을 자꾸 ‘좌파’ 혹은 ‘진보’의 표상에다가 걸어대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진보가 아니었다. 지하조직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아도 그들은 언제나 ‘진보’가 아니었다. 진보적인 지향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아편’과 같은 존재였다면 모를까. 종교가 ‘아편’이 아니라 한국의 진보세력에게는 언제나 ‘민족주의’와 ‘주사파’가 아편이었다. 먹는 순간 황홀해지지만, 언제나 그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발 딛고 눈물흘리는 이들이 실향민밖에 없다는 착시작용을 일으키게 했다.

그 결과가 2007년 대선이라 할 수 있겠다.

자꾸 주사파들은 자신들에게 무식하다 하면 열받아 하는데, 나야말로 정말로 80년대 중반의 사구체 논쟁판 같은 큰 논쟁의 구도라도 일어났으면 하면서 원하는 사람 중 하나다.

제발 쿨하게 갈라져라. 그들에게 ‘진보’라 말 붙이지 말고, 이제 정말 ‘진보’와 ‘좌파’로써 기능하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