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짓거리 하고 앉았네.” (공부에 대한 계급별 태도)

“By the middle of third grade (at around nine), they were 20% less likely than whites to be able to perform tasks such as multiplication.

One explanation, long dismissed as an urban myth, was that black pupils do not study hard because those who do are accused by their peers of “acting white”—and ostracised. Mr Fryer found a novel way to test this notion. (..) He found that the myth was true. Black high-school students with good grades had fewer friends than those with mediocre ones. For whites, the reverse was true.”

(번역)

3학년 중반 (만 9세 가량) 즈음까지 흑인 아이들은 백인 아이보다 곱셈 같은 학습수행을 20% 정도 더 못했다.

도시 전설로 치부돼 기각되던 하나의 설명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는 “백인 짓거리” 하는 걸로 취급돼 동료들로부터 왕따 당하기 때문에 흑인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레이어는 이런 견해를 테스트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  그는 이러한 ‘도시전설’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성적이 좋은 흑인 고등학교 학생들은 평범한 학생들보다 친구가 없었다. 백인의 경우 그 반대가(성적이 안 좋으면 친구가 없는 경우) 성립됐다.”

(출처: “Roald Fryer: From the hood to Havard”, The Economist, 2015. 5. 2)

 

교육학과 인류학자, 사회학자들에게 영원한 떡밥 중 하나를 볼티무어 출신 흑인 경제학자가 입증했다. 흑인 커뮤니티가 갖고 있는 교육에 을 ‘백인 짓거리acting white’로 취급하는 태도다. ‘백인 짓거리’는 한국에서는 ‘범생 짓거리’가 될 것이다. (영어 발음을 제대로 하려다가 범생 짓거리한다며 아픔을 맛 본 과거가 떠오르지만 찢어벌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재생산 문제는 단순한 소득문제(경제자본)가 아니고, 취향 문제만이 아니고, 학습에 대한 태도가 함께 결부돼 발생한다. 계급 사다리는 지배계급이 차버리는 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문화적 지향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누구 탓 문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