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 밥 루츠, [빈 카운터스]

빈 카운터스8점
밥 루츠 지음, 홍대운 옮김/비즈니스북스

자동차 신모델 개발은 제품기획부서(재무부서에서 버림받은 인물들로 구성된 부서)가 맡았다. 이들은 시장분석 결과라는 걸 들고 나와서는 차 외부와 내부 크기를 미리미터 단위까지 정해줬다. 갑자기 엔지니어링부서가 이래라저래라 말이 많아졌고 조립하기에 쉬운지, 패널(네모꼴 금속조각) 하나당 금형을 몇 개나 만들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이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직접 신상품을 창조해 내던 과거와 달리 디자인부서는 이제 이런 지시들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차를 어떻게 제작할지 다 결정했습니다. 차 후드(hood, 보닛) 길이는 이렇게 하고, 앞 유리는 여기까지 오는 걸로 하세요. 실내공간 사이즈는 이렇게 정했으니까 알아 두시고 참, 비용절감을 위해 다른 브랜드 차량과 문짝을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해서 만들어 놨으니 이제 디자이너 여러분이 마무리만 하세요, 아시겠습니까?(50)

# 먼저 빈 카운터스가 무슨 말인가? (나는 ‘빈(empty) 카운터스(?)’ 하면서 책 제목을 기억했었다.)

**Car Guys(현장전문가) : 비전과 열정을 갖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제품 전문가’를 말한다.

** Bean Counters(재무전문가) : 숫자놀음꾼, 직역하면 ‘콩 세는 사람’으로, 숫자와 데이터로 모든 문제를 바라보고 위험을 회피해 제품과 서비스 혁신을 어렵게 만드는 재무, 회계 담당자를 냉소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싸우게 되는 부서는 다름 아닌 ‘재무팀’, ‘회계팀’, ‘원가관리팀’ 등 숫자를 만지는 부서다. ‘인문학의 시대’가 오거나 말거나 회사 안에서 가장 말빨이 서는 논리는 바로 숫자에 기댄 논리다. ‘영업이익’, ‘매출’, ‘간접경비’, ‘직접경비’.. 곧 바로 엑셀에 넣고 돌릴 수 있는 숫자보다 강한 것은 없다. ‘정성적 평가’라는 말을 경영관리 계통에서 1년의 평가시에 이따금 하곤 하는데, 그 말은 역설적으로 나머지 모두는 ‘정량적’으로 평가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밥 루츠의 구분에 의하면 그러한 ‘정량적 평가’를 기준으로 기업의 경영활동을 평가하는 이들이 빈 카운터스(재무전문가)가 되겠다. “콩이나 세고 앉았네”라는 비하가 깔려있는 표현 되겠다.

숫자의 차원에서 보자면 주주의 가치를 극대화하고(“시총이 얼마냐?”), 영업이익률이 높은 것이야 말로 그 기업의 ‘지금’을 표현하는 데 깨나 적절한 일이다. 매 분기마다 삼성전자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에 대해 주요일간지와 방송이 호들갑 떨면서 보도하는 것을 참조하면 되겠다. (물론 조금 더 정교하게 재무제표와 ROI(투자수익)를 볼 수도 있고, NPV(순현재가치)를 보는 방법도 있겠다.) 그리고 기업의 경영관리부서와 재무부서는 조금이라도 ‘정량적 지표’가 떨어졌을 경우 현업의 성과를 쪼아대기 시작하며, ‘경비절감’을 키워드로 하여 융단폭격을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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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크라이슬러 등에서 ‘황금기’를 이끌었던 Car Guy 중의 한 명인 저자 밥 루츠는 GM에 자신이 복귀해서 겪은 일을 통해서 빈 카운터스들이 우선되는 기업경영의 문제에 대해서 철퇴를 날린다(실제 그 전략이 맞았는지는 또한 평가해 볼 문제이다). 밥 루츠의 공략 대상은 정확히는 바로 이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로버트 맥나마라 장관과 그가 이끄는 ‘수재들 집단’Whiz kids이 국방부를 위해 수학의 최적화모델을 사용했던 것이 알려지자 경영학 교수들은 바로 여기서 해답을 찾았다. 맥나마라는 수학적 모델링,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게임이론 그 외 다양한 것들을 도입하여 무기나 물자의 수송∙보급∙관리 방법을 개선하고, 폭탄투하 계획을 짰으며 정신없는 전쟁터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는 데 활용했다. 물론 전쟁터에 ‘고객’이라는 개념이 있을 리는 없다(299).

현재 경영대학원의 교육방식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학생들의 생각에 고객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즉, 고객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아무리 ‘수익성 제고를 위한 최적화작업’을 하더라도 고객이 계속 우리 제품을 살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301).

밥 루츠의 주장은 ‘기업의 생존’이라는 것이 바로 고객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고객관점’(customer’s focus)에 서고, 고객이 가장 만족할 품질을 만들어내며, 그렇게 만들어낸 제품을 고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게 포인트가 된다.

밥 루츠 이전 GM의 제품 개발 과정부터 생산까지의 프로세스는 1) 고객들의 선호도를 미리 서베이를 통해 조사하고 2) 그 중 시장조사결과에서 도출된 평균적으로 유리한 포인트들을 추출하여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고 3) 제품개발의 선행을 담당하는 기획담당임원(VLE: Vehicle Line Executives)들이 얼개를 짜고 4) 초기 디자인(‘창의적 작업’)에 의해서 도출된 결론을 5) 디자이너가 맞춰서 구체적으로 만들고 6) 조립라인을 통하여 양산하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만 따져보면 문제는 ‘평균의 함정’이다. 시장조사 서베이에서 나열된 내용들 중 평균이 가장 높은 것을 조합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없다면 ‘훌륭한 차’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인데, 조악하게 각 요소들이 조립되어 ‘특별한 문제가 없는 차’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바로 위에 언급한 MBA 출신들의 ‘데이터 분석’ 스킬이 어깃장을 놓게 되는 것이다. 평균점수는 높되 별 특징 없는 제품. 삼성전자의 제품에 대해서 애플 애호가들이 비판하는 대목, 바로 그거 아닌가?

이에서 곧바로 도출되는 밥 루츠의 전략은 1~6중 디자이너가 최 선행 단계부터 실제 제품의 구체적 구상까지를 스튜디오에서 구성하고, 그 구상을 엔지니어가 실현될 수 있게 기술을 제공하고, 최종적으로 생산라인이 그 자동차를 양산하며, 마케팅이 고객들에게 다가가는 광고와 판촉활동을 해내는 것이다. 엔지니어와 시장분석 전문가 중심의 업무 프로세스에서 디자이너와 마케터 중심의 프로세스로 전환되는 것이다. 당연히 디자이너와 마케터 중심의 프로세스로 전환되면서는 ‘시장분석 전문가’들의 말빨과 기업내 재무전문가들의 영역이 축소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자마자 했던 일은 라인업의 단순화(노트북/데스크탑, 프로페셔널용/일반용)도 있지만, 조나단 아이브처럼 디자이너들이 선행단부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까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인데, 루츠가 생각했던 GM의 자동차도 그러한 방식으로 개발되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잡스도 ‘고객’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영감’을 줄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가장 ‘쿨’한 마케팅과 감각적인 PT, 광고가 만들어지는 것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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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루츠가 했던 방식의 경영방식에 대해서 단정적인 평가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제조업의 트렌드가 시장의 생태계에 adapt하고, 기민한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되는 상황에서 보면 밥 루츠가 생각했던 GM에서의 경영방식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사실 고객이 생각하는, 혹은 생각하지는 못하지만 필요로 하는 것들을 뽑아내는 데에 엔지니어나 빈 카운터스가 할 일은 별로 없다. 기업의 살림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데에서의 원가회계, 재무회계, 관리회계의 중요성이야 두말할 나위 없겠지만. “시장을 어떻게 개척할 것인가?”라는 전략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될 경우는 언제나 ‘우뇌’가 빨리 움직이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도 주지의 사실이고 자동차 산업의 경우는 자동차 디자이너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B2B 산업은 어떨까? 그건 내 질문) 다만 시장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주요 제품 시장의 라이프 사이클이 ‘성숙기’에 이르렀을 때 중요해지는 것은 캐시 카우에서의 최대 이익 창출일 것이고 그 순간에는 더 많은 마진을 뽑기 위해 관리회계의 중요성이 증가될 것이고, 생산라인에서의 속도와 비용절감이 키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Car Guys vs Bean Counters의 구도는 크게 보면 의미가 없이 느껴질 수도 있다. 결국 남는 것은 타이밍과 시장의 구조변동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현대자동차 임원들에게 원서로 읽혔고, 미국에서 제조업 논쟁을 이끌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것만이 중요할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제조업’이 아작나기 시작했다는 ‘위기의식’일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일본에게 제조업 수위를 내준 미국, 1990년대 이후 무섭게 성장하는 제조업 ‘신흥강국’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의 ‘위기의식’이 전통적인 제조업 아저씨 밥 루츠를 불러내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의 제조업은 밥 루츠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취해야 할까? “제조업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 삼성전자가 만들어낸 물류시스템과 lead time 단축의 운영은 애플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대자동차와 같이 수직계열화의 효과도 강한 편이다. 생산의 차원에서는 ‘임금’ 문제만 빼놓으면 특별하게 흠잡을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문제는 디자인과 마케팅인가? 애플 애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카피캣’을 면하지 못하는 게 문제인가? 아니면 시장에서의 신호를 놓쳐서 ‘만년 2등’에서조차 휘청했던 LG전자의 휴대폰 사업 마케팅 전략이 문제였나? 과연 이런 게 문제인가?

아니면 아예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꿔서 제조업은 말짱한데 ‘금융’이 장난을 많이 쳐서 제조업이 힘든 것인가? ‘신자유주의’가 문제인가? 한국 제조업이 ‘금융 장난’ 때문에 휘청거린 것은 부채비율을 높게 잡고 ‘차입경영’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김우중의 대우 시절, 즉 1998년 이전 모델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제조업’의 문제는 다시 어디에서부터 물어야 하나?

밥 루츠의 [빈 카운터스]를 읽으면서 ‘견실한 제조업’의 원칙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자꾸 매크로한 시장과 ‘한국 제조업’이라는 더 큰 단위의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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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회사에서 담당하는 업무에 대해서 신랄하게 밥 루츠가 까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나도 그와 같이 생각한다.

“헨더슨은 기업문화를 뜯어고치라는 성화에 못 이겨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옛날 GM이 하던 방식을 답습했다. 임원들이 다 같이 모여 문제가 무엇인지 토론했고, ‘기업문화 혁신’팀을 만들고 컨설턴트들을 고용했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결코 기업문화를 바꿀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훨씬 더 단순하고 더 강력하며 화끈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내 경험상 ‘이끄는 대로 따라오지 않을 거라면 앞길을 막지 말라’는 식으로(그렇지만 언제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가끔씩은 나 자신을 깎아내리면서라도 웃음을 주면서) 하는 것이 항상 먹혔고, 또 GM에서는 바로 그런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업문화 혁신팀이나 컨설턴트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처럼 과거 GM의 방식을 답습하는 모습을 보고 이사회에서 초조해했던 (때로는 불같이 화를 냈던) 것도 당연했다는 생각이 든다”(285).

사실 ‘기업문화’는 일하는 방식의 총화이며 ‘결과’에 가깝다. “문화가 문제이니, 문화를 바꾸자” 식의 개소리를 하는 집단으로서의 기업문화 혁신팀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오래된 제조업 선수의 주장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