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리, 위화감, 친구

<FONT color=#24298f size=3>10년 만에 친구를 만나면서 느낀 감정에 대해 </FONT>

며칠전 10년이 넘게 못 만난 친구를 만났다. 여러가지 생각을 가지고 만났는데, 예전에 아련하게 갖고 있었던 ‘풋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리기도 했으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그가 성장했는가’가 정말 궁금했다.

그 친구를 만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내가 어디에 가도 금방 친화력을 가지고 집단에 적응하는 능력을 수십년 동안 계발 한 덕택이었을 까닭(쉽게 말해 오지랖)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대화는 이어졌고, 마치 매일 보다가 몇달 쉬었다 만난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렇다하여 그와의 대화 중에 난감함, 그리고 괴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왜냐면, 그가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파악할 때 언제나 함께 고려하기 마련인 나의 죽마고우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의 섣부른 착각이었으면 좋겠으나, 나이 26에 친구들 이야기를 할 때 빠질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예컨데, 서로 조심하는 ‘제스츄어’는 취하나 서로 어떤 일을 하고, 어느 정도의 잠재적 ‘자본’이 있고, 또 그것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자본’을 가지고 있는 지는 너무나 궁금하고 결국은 여러가지 우회로를 통해서 다 털어놓기 마련이다.

카니발(이적, 김동률)의 “그땐 그랬지” 처럼 회상하는 것도 비슷한 사회적 계급과 비슷한 문화적 공감대를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숱한 드라마에서 단칸방에서 살던 여자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그리고 ‘개천에서 난 용’ 이야기를 보곤 하지만, 실로 그건 언제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괜히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성인이 될 수록 그런 경향은 강해진다.

난, 서울의 게토에서 자랐다. 주위에 5층 이상의 건물은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자 한두군데 겨우 단지를 이루며 지어졌고, 그나마 그전까지는 단독주택들과 똥개천(지금은 복개천) 주위의 판자촌과 달동네가 주위의 풍경이었고 그걸 당연히 여겼으며,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오락기를 훔쳐가거나 혹은 돼지 저금통을 허는 일 또한 비일비재했다.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삥’뜯기는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 였다.

학원이라는 곳에 강남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을 때, 난 독서실 윗층에서 담배를 피우는 형들과 함께 공존했고, 고2때의 전설은 어떤 녀석이 어떤 여자애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영민하게 혹은 영악하게 고등학교 2~3학년을 대응한 덕분으로 게토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삐끗했으면 나역시 그 멤버중에 한명이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2000년대가 들어선지 7년이 지났지만, 내가 사는 동네의 분위기라는 것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가방끈’이 길거나 사회적으로 ‘지도적’ 위치를 점하는 이의 탄생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답답함’이 짓누르고 있는 게 게토의 현실이다. 물론 동시에 ‘순박함’이라는 민중의 ‘긍정’이 보이기는 하나, 그것이 집단적 ‘에너지’로 작용하기 보다는, 인도의 수드라 신분의 그것처럼 하루하루의 ‘위안’으로 그치고 있다.

어떻게 게토에서 일탈해서 ‘대학’이라는 탈출구에서 나름 하고 싶은대로 모색을 하고, 군대에서 복무중이지만, 여전히 그 ‘사회적 관계’가 주는 압박이라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폴 오스터에게 주어지는 ‘브루클린’의 풍경처럼 말이다. 나에게 면목동은 그 자체로 내 존재의 바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그 친구를 만났다. 어렸을 때의 추억담만으로 보내기엔 우리의 ‘현재’가 너무나 궁금한 ‘금단의 사과’였고, 결국 난 우회로를 통해서 ‘거짓’은 말하지 않되, 사실을 다 말하지도 않는 어정쩡한 방법으로 내 친구들의 생활을 이야기했다. 한번 함께 보자고 했지만, 나의 괜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성사시키는 데에 부담을 느꼈다. 내가 20살만 되었어도 그러진 않았을 텐데. 나도 역시 할 수 없는 유약한 인간에 불과한 걸까?

좀 그런 부담을 털고, 함께 파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한참 유행하는 레지던스에서의 ‘테마 파티’. 하지만 일단 돈이 문제이고, 옷이 문제이고, 또 함께 ‘공유할 무언가’의 부재 때문에 걱정이다. 오로지 ‘옛날의 회고’라면 너무 모임이라는 것이 식상하지 않은가? 동창회가 ‘옛날의 회고’보다 오히려 ‘현재의 과시욕’에 의해 유지된 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좀 떳떳하게 사회적으로 ‘서’있는 나와 내 친구들이라면 옛날의 추억을 공유한 그를 초청하고 우리의 일원으로 연대하고 싶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판단을 좀 멈추게 된다. 괜한 위화감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내 판단으로는 ‘괴리’가 걱정이 된다.

이런 이야기가 내 친구들을 탓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꾸만 이렇게 ‘추억의 공유’를 토대로 한 공동체의 형성마저도 방해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불만이라는 것이 오히려 맞다. 이것의 극복은 개개인의 ‘입신양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난 서로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데, 개개인의 ‘입신양명’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이기심과 위화감의 강화만을 부추긴다. 모르지, 이렇게 생각많은 내가 또 한편으로 그런 ‘편견’에 사로 잡혀있는 지도. 이 그지 같은 ’88만원 세대’의 하루 하루여.

그냥 마장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별놈의 잡생각이 다 드는 구나. 그래도 ‘친구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