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릿 GRIT을 읽는 정책가의 태도 (앤절라 더크워스, 그릿, 2016)

좋은 자기계발서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릿’(grit, 기개)에는 일반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목표지향적인 태도와 그것을 실현해가는 원동력이 등장한다. 그릿이다.  하지만 ‘그릿’에는 진짜로 그릿이 역경을 딛고 성공 혹은 성취를 하는데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은 없다. 그렇다고 ‘그릿’이라는 요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릿이 독립변수가 아닌 매개변수(parameter)이거나, 설명변수(explanatory variable)일 경우 특별히 틀린 말도 아니게 될 것이다. “성공한 사람에겐 그릿이 있다.” “그릿이 있는 사람에겐 성공이 있다.” 그냥 그 정도 이야기. 심지어 더크워스는 솔직히 딱히 부정도 안 한다. 유전적 요인이 미치는 의미가 제한적인 것처럼,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그릿이 미치는 영향 역시 제한적이지 않냐고 따져묻는 다면 그이는 “Deal!”하고 승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논의가 그 쪽으로 빠져서 이 책이 “아무 것도 입증하지 않았으므로 쓸모 없는 자기계발서류에 불과하다” 식으로 사라지는 것 또한 편협한 방식이라고 본다. 또 다른 방식의 힐난으로 이 책이 ‘유전 결정론’에 반박을 해주는 전반부에는 그럭저럭 쓸모가 있다가, 후반부에는 셀럽들의 성공담이나 늘어놓고 그걸 해석이나 하면서 장사한다는 투도 있다. 내가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 두 번째 해석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좋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책에서 다루는 사회적 메시지 때문이다. 특히 ‘무엇을 할까’에 대해서 부단하게 계획해야 하는 정책의 차원에서 그렇다. 앤절라 더그워스에 의하면 ‘그릿’이 가장 특징적인 면은 ‘기를 수 있다’는 데 있다. 스스로 기를 수 있되, 주변의 지지와, 스스로를 둘러싼 문화가 기를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책은 계속 언급하지 않지만, 스스로 그리고 주변의 억압과 문화가 그릿을 기르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열정: 멀리 목표를 두고 일하고, 이후의 삶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확고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정도. 단순한 변덕으로 과제를 포기하지 않음. 새로움 때문에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으며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성향.

끈기: 의지력과 인내심의 정도. 한 번 결정한 사항을 조용히 밀고 나가는 결단력. 장애물 앞에서 과업을 포기하지 않는 성향. 끈기, 집요함, 완강함. (p. 113)

그릿의 두 가지 측면 ‘열정’과 ‘끈기’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거나 자라날 수 있게 하고, “주변에서 계속 ‘실패’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질문을 바꾸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사례는 지역사회와 국가가 사회정책의 측면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게 된다.

통제할 수 없는 시련으로 이어진 생활사는 어떤가? “그래서 나는 빈곤한 가정의 아이들이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스티브가 말했다. “그들은 무력감을 자주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해서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성공할 거야.’라는 자세를 배우지 못하죠. 그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매우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측됩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저런 일이 일어난다’는 식으로 자기 행동에 따라 앞으로 닥칠 상황이 달라진다는 수반성이 학습되어야 하는데 말이죠.”(p.253)

일군의 구조주의를 몸에 탑재한 사회과학자들과 운동가들은 늘 답을 가지고 있다. 일련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벌어진 일. 결국 국가가 잘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변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차원에 가면 그냥 손가락을 빠는 경우가 많다. 지역은 어떻게 회복되어야 하며, 슬럼가의 아이들은 어디에서 누구랑 무엇을 하면서 놀게끔 해야 할까? 어떻게 ‘작은 성공small win’을 누적시켜 자존감을 높이고 성취동기를 통해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할까? (여기서 “꼭 성공해야 하냐?”하면서 초를 치면서 등장하는 현자들은 그냥 소박하게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조용히 입을 다무시라고 하고 싶다. 나는 무엇이든 선택하고 선택하면 해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좌파든 우파든 최소한 합의할 수 있는 정의에 대한 개념이라고 본다.)

먼저 여러분 스스로 ‘안에서 밖으로’ 그릿을 키워나갈 수 있다. 여러분은 관심사를 계발할 수 있다. 현재의 기술 수준을 능가하는 도전 과제를 매일 연습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여러분의 일을 자신보다 큰 목적과 연관 지을 수 이싿. 그리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때에도 희망을 배울 수 있다. 다음으로 ‘밖으로 안으로’ 그릿을 길러갈 수도 있다. 우리의 그릿 개발은 부모, 코치, 교사, 상사, 멘토, 친구 등 다른 사람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p.352)

이 책 ‘그릿’은 실패에 무력감을 경험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자양분으로 받아들이는 ‘성장형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를 위해 스스로도 할 수 있지만, 환경이 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정책 수행이 오랜기간 쌓이면 엘 시스테마처럼 ‘회복한 공동체’의 집단적인 경험과 정체성까지도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사회’가 도와주라는 ‘정책’의 차원이라면 이것을 고민하는 것이 공무원과 교사와 교육행정가의 일이 아닐까.

제대로 돈 안 내려고 ‘절세 테크닉’ 연구하는 졸부에게 세금을 제대로 때리는 것도 국가의 일이다. 재벌에게 좀 더 합리적인 법인세를 때리면서 동시에 정당한 방식으로 고용 하라고 외치는 것도 국가의 일이다. 하지만 ‘무력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이를 딛고 일어나 직업적 성취를 이루고,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국가의 일이다. 사회 정책을 생각하는 이들이 이 책과 [왜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 하나] 같은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대안을 풍성하게 키워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