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엔지니어링 역사 쓰기의 필요성 (기초과학 vs 공학의 구도 벗어나기)

장기적인 우위를 위한 기초과학 투자“와 “추격전략에 따른 산업에서의 우위를 위한 공학 투자”(슘페터주의) 관점은 늘 충돌해 왔다. 이과대 교수들은 기초과학 투자 하라하고, 공대 교수들은 대전제만 동의하면서 각자 산업 수요에 따른 공학 연구 열심히 하면서 성과 홍보하고..

여기에 대한 경제추격론/산업경제학 쪽에서의 통설은 이런 거다.

‘Fastest(또는 first)-follower’ 하던 시절에는 그런대로 산업이 버텨주니 떨어질 ‘떡고물’이라도 있었던 셈. 이젠 한국의 제조업 중심 산업 자체가 ‘first-mover’을 해야 하게 된 상황에서 더 누굴 추격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모델을 만들어야 하니 기초과학을 부랴부랴 챙겨야 하게 생겼다는 것.

근데 이런 설명이 꼭 맞나? 기초과학과 수학을 이제 챙겨야 산다고 절박하게 말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지금까지 독일과 일본 또는 미국과 영국에서 1970~90년대 어떤 식으로 설비와 기술을 수입/이전해 왔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한국의 산업현장에 착근(embed)시켜 왔는지에 대한 해설 부재가 내가 볼 땐 더 큰 문제다. 어차피 이제는 공학을 공부하고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기초과학을 잘 하는 건 점차 기본이 되어버렸다.

요컨대 한국 산업과 과학기술의 진화를 원한다면 기초과학 보강인지, 전략적 공학 기술 개발인지의 논쟁 구도보다 한국 엔지니어링의 역사를 잘 써보고 거기에서 도출되는 과제를 차근차근 풀어내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기술/인프라 수입/이전’ + 엄청난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한 ‘대량의 공고 출신 작업장 엔지니어(workplace engineer)’ 체제가 어떤 구조로 움직였는지 기록이 필요하다. 그래야 공대와 자연대에서 원리(principle)를 배운 랩실 엔지니어(laboratory engineer)에게 기능을 전수할 것 아닌가? 모든 것들을 회식 하면서 전하는 무용담이나 알음알음 구전으로 전해주는 암묵지tacit knowledge 형태로 사장 시키고 말 것인지?

현재 현장에서는 도전과 실패의 과정을 백서로 만들어 풀어내기 보다는 그 엄청난 악전고투의 경험을 했던 엔지니어들을 급한 공정에 땜빵으로 갈아넣는 일이 횡행하다. 산업의 전환이 빠르지 않을 때, 즉 정적인(static)한 상황에서야 그게 큰 손실이 아니겠지만 지금처럼 구조 자체 변동이 벌어지는 동적(dynamic) 상황에서 암묵지 전수의 손실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 차원으로 보자면 ‘전략/기획’의 기능. 산업을 짜는 입장에서 보면 ‘정책’의 기능이 부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기록은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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