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와 하위계급 남성

[미디어스] ‘일베 기자’를 위한  변명, 그는 추방해야 할 ‘괴물’이 아니다.

나는 일베가 한국사회에서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보다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더 많다. ‘일베충’으로서 보여주는 갖가지 패악질에 대해서 일일이 지적하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 안의 일베’를 찾아서 성찰을 권하는 시선에도 거리를 두고 싶다. 섣부른 단죄와 더불어 요새 유행하는 섣부른 ‘성찰’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갖가지 방식의 비평은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누가’ 읽느냐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촘촘하지 않은 논쟁 지형이 만들어낸 틈새에서 나는 좀 더 사회학적으로 따져보고 싶다. “일베는 누가 할까?”

더불어 달리 질문해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일베에 대해 까는 글은 누가 읽나?”

사실 ‘일베’가 누구인지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 그런 방식의 서베이가 잘 성립될리도 없다. 일베가 모조리 ‘일밍아웃’을 하고 나타나기 전에는 ‘누구’인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찾기 어렵다. 다만 먹물들이 은연중에 갖고 있는 편견 두 가지는 지적하고 싶다.

먼저 일베가 ‘루저’라는 편견이다. 일베는 제대로 직장도 갖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사회불만 세력’이라는 편견이다. 하지만 늘 강조하지만 저학력에 밥벌어먹기 바쁜 남자들은 일베 안 한다. 일베가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그 길고 지루한 글을 찬찬히 읽고 있느니 그 시간에 게임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게 느껴질 일이다. 달리 말해 일베도 나름 ‘담론’의 영향력 안에 있는 자들이 하는 일이다. 일베 사이트에서 네임드들이 써놓은 역사물 다 읽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긴 글을 읽을 수 있어야 일베 하는 거다. 실제 주변만 뒤져봐도 대졸 공채 뚫고 대기업 들어와서 일베하는 SKY 출신 사원부터 차장까지는 이미 보고 있고,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깨나 오래됐다. 여기에 ‘일베 기자 사태’는  ‘루저’들이 한다는 오해가 철저히 편견임을 드러낸다.

일베는 전통적인 한국형 마초도 아니다. 완력으로 여성을 제압하며 사는 남자들은 구태여 일베에 들어가서 인증까지 할 필요가 없다. 구구절절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마초성을 과시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나. 그냥 동네 건달들이랑 맥주먹으면서 야부리 풀고 자신의 와이프든 여자친구든 성매매 업소 여성이든 ‘김치녀’에 대해서 일베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내키는 대로 다루면 된다. 외려 일베는 그 정당성을 구태여 자신들이 척지고 있는 이들과의 웹상 전투와 플래시몹를 통해서 구현하려 한다. 한국은 근육 마초가 그런 짓까지 구태여 할만큼 힘들게 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일베에 대한 여집합을 통한 범주화에 대해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노동의 관점에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박살나고 있기 때문에 그걸 가장 극심하게 체험해버린 ‘루저’와 ‘한국형 마초’들이 일베에서 놀면서 여성혐오 정서에 격하게 공감하거나 온라인상에서 폭력을 가하고 있지 않겠냐고. 하지만 이 역시 아니라고 본다. 한국의 진보성향 인텔리들이 갖고 있는 착각 중 하나가 ‘남성 생계부양자’가 원래 많았다가 신자유주의 시절에 의해 몰락했다고 보는 견해인데, 실제로는 대학 입학률 25% 내외였기에 80년대 학번 대학생들에게 취업이 껌이었다. 나머지 75%에게 어떤 세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특별히 질문하지 않을 따름이다.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00년대에도 사실 정규직으로 상징되는 ‘남성 생계부양자’의 숫자는 과반수를 넘긴 적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여성과 경합하는 일자리에 도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정규직 생산직마저도 그렇다. 일베에 들어가서 투덜거리는 자들은 그러니 곧 ‘주요 대학’ 4년제 대학 이상 ‘어느 수준’ 이상의 학력을 가진 남자들이라는 견적이 곧바로 나오게 된다. 몰락할 기반을 가져본 적이 없는 데 몰락은 무슨 몰락이라고 일베에 가서 놀겠는가. 하위계급 남성들은 한국에선 ‘남성 생계부양자’를 애초에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패악질을 부리고 깽판을 부리는 것을 ‘가부장제’와 연관하는 것은 일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타령은 일베 이야기하면서 제한적으로만 해야한다고 본다.

타임라인에서 본 어떤 트친의 이야기처럼 나는 일베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어떤 시대에나 있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나치처럼 반사회적 기치를 들고 정치권력화되거나 온라인에 둥지를 튼 채 메인 스트림에 진입하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는 중이다. 일베에 대해 ‘누가’ 어떻게 패거리가 됐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보려한다. 그게 맞을 거다 아마.

섣부른 단죄나 쓸데 없는 성찰 모두 안 하겠다. 일단 더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