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방식의 조직화

빅데이터, 승리의 과학10점
고한석 지음/이지스퍼블리싱

이 책은 평균 성향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매스 캠페인(mass campaign)이 아닌, 모든 사람 각각에게 걸맞은 마이크로 타기팅(micro targeting)을 통해서 승리했던 오바마 캠프의 2012년을 복기한다. 가장 선진적인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인 AWS(Amazon Web Service)을 통해 583일간 선거운동을 진행했던 내용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데이터 과학자들이 랩실에 모여서 그 자리에서 모든 선거운동을 진행한 온라인 선거운동 이야기라면 외려 믿음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바닥을 훑으며’ 움직였던 선거운동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수집한 정보가 데이터를 더 보강해 정보의 선순환을 일으켰던 그 메커니즘. 그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실물’에 대해 하고 싶어하는 말일 것이다.

다른 한 편 내 관심사는 ‘새로운 방식’의 정치운동가들 양성이다.

NOI는 자신의 사명을 3가지 원칙으로 정리했다. 첫째, 테크놀로지에 능통한 새로운 세대의 캠페인(선거운동) 요원을 훈련하고 지원한다. 둘째, 테크놀로지와 조직활동 영역에서 획득한 지식을 진보진영 내에서 확산한다. 셋째, 실제 결과를 중시하고 체계적 사고를 적용한 새로운 연구와 선거 이후 조사평가를 수행한다. 이를 통해서 진보적 캠페인(선거운동) 및 단체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만든다(244).

지난 6년 동안 NOI의 훈련코스를 거쳐간 차세대 활동가들은 3,000명이 넘으며, 2012년 한 해에만 1,581명이 직접 훈련을 받았고 운라인 과정을 이수한 활동가는 2,823명이었다. 이렇게 NOI는 정치 캠페인 및 선거운동 운영방식을 소리없이 강력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도록 만들었으며, ‘조직활동가의 사관학교’(West Point for Community Organizer)라는 명성을 얻었다(246).

책을 읽다가 그람시가, 혹은 레닌이 2010년대를 살아간다면 어떤 방식으로 정치운동을 조직 했을지 생각해 봤다. 그들은 분명히 on-off-mix 방식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을 것이다. 게시판 시대와 페북/트위터 시대를 넘어선 방식을 어떻게든 접목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slack을 썼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언가를 끝끝내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카톡의 오픈 채팅을 썼을 수도 있고.

# 잠깐 옆으로 새자면 맑스는 여전히 주류 경제학과 금융이론을 섭렵하고 있었을 것이다. 동시에 문돌이이면서도 할 수 없이 담배를 뻑뻑피면서 알고리즘 공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엔 영국의 Young Labour 같은 정치학교가 없다. 나는 미국엔 정치 활동가를 키워 정당으로 수혈하는 공식적인 경로가 없는 줄 알았다. 정당론 교과서가 언제나 미국 정당을 ‘선거전문가 정당’이라고 칭하고 대중정당/포괄정당과는 거리를 두고 있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의 시대를 겪으며 다른 방식으로 풀뿌리조직부터 중앙당까지의 다리가 놓였다. 버니 샌더스의 열풍도 이와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다시 돌아와 한국의 야당엔 정치학교가 없고 차세대 리더를 길러낼 풀뿌리 조직이 없다. 게다가 기술적 진보를 소화하면서 이를 정치적 파급력으로 전달할 수 있는 주체는 안철수 의원 정도지만 그는 그런 상상력을 잘 발휘하기에 정무적 감각이 떨어진다.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기 보단, 다른 방식의 돌파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나 기술에 대한 무지, 숫자에 대한 경시가 있는자들에게 책임 있는 수권세력으로의 역량이 길러지지 않을 것이다.

데이터 리더가 회귀분석이나 데이터 마이닝 같은 분석 기법에 능통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데이터 리더는 분석한 결과로 나온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전략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만 알면 된다. 데이터 리더십은 오히려 자신보다 똑똑한 데이터 분석가들을 많이 채용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에서 발휘된다(270).

다른 감각의 후보, 다른 방식의 미디어, 다른 방식의 기술이 필요하다. 물론 그 기저에 정책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필요하며 정치에 대한 담대한 낙관주의가 필요하다.

<figcaption class="wp-caption-text">동성혼 합법화에 대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답</figcaption></fig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