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이 답답한 직장인을 위한 책 (박이언, 직장학교, 2015)

직장학교8점
박이언 지음/이야기나무

 

100:1은 족히 넘을 경쟁률을 뚫고 공채로 입사한 대기업. 신입사원 연수를 거치면서 “사장님 되세요”라고 동기부여하는 강사의 목소리와 뭔가 이뤄낸 것 같은 성취감으로 가득차 있는 동기들의 눈망울을 기억하면서 현업에 배치된다. 뭐든 적극적으로 뭐든 싹싹하게 해내려고 덤비는 신입사원이 나가 떨어지는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곧 퍼져버리는 직장인들의 동기부여를 위한 다양한 매체가 있다. 대개 대기업은 3-4년차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집체 교육을 실시하고, 매 진급 때마다도 교육을 실시한다. 강사의 반짝하는 멘트에 혹하는 것도 한 두 번, 어느새 모두 지겨워 하고 매너리즘은 늘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 이야기와 동기부여 이야기부터 하는 이유는 대개 한국의 기업들이 직원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약빨’이 떨어질 때마다 뭔가 주입하면 다시 신입사원의 ‘싱싱한’ 상태로 돌아갈 것만 같다는 착각. 사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을 교육 담당자와 직원, 그리고 심지어 임원들도 다 알고 있다.

대기업에도 교육 이야기에 냉소적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혁신’의 관점에서 ‘과제’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뽕’ 말고 ‘일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나처럼 조직문화혁신을 담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따금 회사 전체가 침체되거나 경영적인 위기 상황이 오면 전사가 각성해야 한다면서 ‘혁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각종 TFT가 생기고,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도대체 문제가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찾아서 CEO나 오너의 ‘명’을 따라 해결하겠다면서 칼바람을 휘두르곤 한다. 하지만 이럴 때에도 대개의 직원들은 이번 ‘푸닥거리’가 언제까지 갈지에 대해 냉소한다. 그런 종류의 혁신의 지속력에 대해 지독한 ‘면역’이 되어 있는 곳이 한국의 대기업 집단이다.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교육이 부족한 것도, 혁신이 부족한 것도 아닌 것 같다. 한 명의 일하는 사람으로서 ‘알 수 없이 답답’하고 의욕이 없다.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할지가 견적이 안 난다. 일은 일이니까 한다. 그런 상태. 술이나 마시고 주말만 기다리는 방식으로 때운다.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박이언의 [직장학교]는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들에게는 ‘현실 인식’을 주고, 이미 기업의 생리에 대해서 빠삭하게 파악하고 다른 방식으로 모색하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나 같은 직장인들에게는 ‘힐링’을 준다.

유교주의에 찌든 조직문화, 배움과 성장을 멈춘 회사에 대한 비판이야 흔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우리의 ‘노동’이라는 것이 어떤 차원에서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언급은 좀 더 재미있다. 단일화된 세계경제(세계화의 효과)에서 기존의 룰이 무화되고, 단순한 저숙련 노동 따위는 기계에게 대체된다는 것을 넘어서 지적 노동도 점차 기계가 대체한다는 배경.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이 책이 다루는 주제다.

요새 내 고민은 “나의 경쟁상대는 ….”으로 나왔던 IMF 이후 공익광고와 비슷한 것이었다. 한 가지 함정에선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10년 후 지금 부장과 같은 부장이, 20년 후 그 임원처럼 될 것을 생각했을 때 느껴지는 소름. 또한 그렇게 될 비슷한 연차의 직원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소름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분명해졌다. 내 경쟁상대가 직장의 동기나 선후배가 아닌, 차라리 같은 일을 하는 다른 회사의 누구랄지 혹은 다른 나라의 비슷한 동년배 누구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광고가 나온지 15년이 지난 가운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이미 몸 빠르게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일’을 해본 사람들의 노하우는 어느 정도 축적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 [직장학교]가 그 노하우를 어느 정도는 전해준다. 그냥 “외신 기사를 읽어라”가 아닌, “어떤 보고서를 읽으라”는 것이 아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이 아닌 어떤 노하우. 어떤 수준이 ‘실용’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박이언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키워드는 ‘민첩한 배움’과 ‘실용적 창의성’이다.

먼저 ‘민첩한 배움’이야말로 회사에 가서 60년대생 한국에서 대학 나온 부장들이 가장 멍청하며 도태되기 십상이라는 것을 증거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죽지 않으려면 습관들여야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민첩한 배움’이란) 새로운 도전을 찾는 습관, 자신에 대한 피드백을 구하려는 노력, 스스로를 반추하고 업무를 새로운 배움으로 재편성하는 행동, 관찰을 통해 새로운 패턴을 찾아내려는 호기심, 남들이 놓치는 통찰을 배움과 연결시키려는 노력 등 민첩한 배움은 ‘매순간 배우려는 개인의 습관과 실천’을 뜻한다(106).

배움. 직장 다니면서 내게 가장 사무쳤던 말이라 자꾸 곱씹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직장학교’. 제목에서도 오는 느낌이 ‘민첩한 배움’에서 다시금 전해진다.

그리고 ‘창의성’. 이미 똘아이같이 구는 것이 창의성이 아니라는 합의 정도는 알만한 사람끼리는 있지만, 좀 더 면밀한 정의가 필요했는데 이 책에 있다. (아, 이전에 이미 두산 광고가 비슷한 지점을 짚긴 했었다.)

창의성은 ‘문제해결 능력’이다. 직장 업무는 매순간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직종과 업무에 상관없이 늘 새로운 과제에 맞닥뜨린다. 그 과제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창의성이다. 그것이 직장인에게 필요한 실용적 창의성이다. 문제해결 능력은 누구나 연습하고 실천하면서 배우고 향상시킬 수 있다(158).

사실 책에 언급되는 다양한 스킬들 자체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경영기법이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부분은 각자 필요한 수준에서 구글링만으로도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좀 더 업데이트되고 상세한 정보는 박이언의 블로그를 찾아서 보는 것도 좋아 보인다. (나도 요새 그의 블로그에 꼭 필요한 내용이 있어 곰곰히 보는 중이다.) 그 때 그 때 궁금하면 그의 박이언 트위터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방법인 것 같다.

책을 읽고 ‘스승’을 만난 느낌은 아니다. 외려 같이 고민하면서 함께 물어보고픈 ‘동료’가 생긴 기분이다. 어쩌면 흔한 커리어겠지만, ‘글로벌 노마드’로 여기저기 일했던 저자의 넓은 시야가 잘 보이는 것이 역시나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그리고 저자의 연배를 추정하건데 단순히 ‘젊어서’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느끼는 직장 생활의 다른 방식의 ‘연륜’을 ‘힘희롱’ 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 이른바 ‘혁신 경제’의 시대, 판에 박힌 이야기 말고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한 명의 노마드로서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좋지않나.

중공업 세계에서 갖힐 뻔할 때 딱 시의적절하게 등장한 책, 고맙다. 앞서 언급한 제현주의 책과 더불어 일에 대한 생각을 붙들어주는 올해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