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공부와 일을 위한 공부

일을 위한 공부만 했던 사람에게 삶을 위한 공부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어쩌면 석사 이상 ‘고학력자‘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일지 모르겠다.)

트위터 타임라인에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난리가 났던 2월 즈음이었다. 지인은 같은 세대에 살던 사람들인데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취업하기 위해 공부하느라 대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크게 신경 쓸 새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한동안 “그래도 대학생인데?”라는 생각에 갖혀 있다가 조금 지나서는 그 학교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하게 됐다. 또한 ‘역사적 분석’을 했다. 그 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의 계급적 성분 그리고 학교의 역사. 그렇게 탈탈 털고 또 탈탈 털었다. 분명 사회학적 분석은 중요했다. 그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인적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제하고 이야기하자면, 학생운동 담론과 ‘삶을 위한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드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커뮤니티에서 자연스레 자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공부가 어쩌고 비난하는 것은 그냥 ‘못배운 짓거리’에 불과하다. 정말로 그는 학생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활동과 관련된 어떠한 관심도 갖기 어려웠던 조건에 있었던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대해 단 한 번도 실감나게 느낄 수 없었으니 그에게 적절한 평가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틀려먹은 시도였다.

그러나 사회학적 분석 자체는 어떤 사람에 대해 묻게 될 때 ‘행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생각을 방해하게 되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좀 지나 떠올리게 된 것이 ‘일을 위한 공부’와 ‘삶을 위한 공부’라는 얼개다. 여기서 일과 삶 중 ‘삶’은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삶이라기보다는 임금노동 ‘일’을 제외한 나머지를 의미한다.

나는 대학원까지 공부했건만 단 한 번도 ‘일을 위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정치학을 전공했고 또 지나 문화연구, 인류학을 전공했다. 현실정치와 관련된 보좌관이나 정당연구소, 혹은 기자를 했다면 분명 전공공부란 것이 ‘일’을 위한 수단이 됐을지 모른다. 사실 정치학과 인류학 모두 그러한 의미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나는 그렇진 않았다. 단 한 번도 배운 것을 곧바로 일터에서 써먹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많이 배우고 깊게 사유하는 방식,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었다. 내게 정치학 공부가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만들어줬다면, 인류학 공부는 성찰적 접근과 나에 대한 객관화를 가능하게 해줬다. 더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는 학문을 찾을 지언정 현실에서 더 잘 써먹을 수 있는 ‘기예’를 익히는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넓은 의미에서 나는 딜레탕트에 가깝게 전공을 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치열했지만 그것을 곧바로 써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삶에 대한 태도,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삶을 위한 공부’였다.

이에 반해 애초에 취업을 위해서, 기업의 이윤추구활동을 위한 마케팅을 전공하고 그 자체에 모든 것을 걸고 매진했다면? 대학에서 만난 공부가 오롯이 ‘일을 위한 공부’였다면? 그에게 ‘사회적인 어떤 것’과 ‘삶을 위한 어떤 것’은 ‘공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고등학교까지 ‘윤리’, ‘도덕’, ‘바른 생활’을 배워왔기에 그 역시 공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만 말이다. ‘사회적인 어떤 것’과 ‘삶을 위한 어떤 것’은 실제로 넓은 외연에서 볼 때 기업의 직원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기술적’ 측면에서 회사에서 즉각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삶을 위한 공부’ 자체는 늘 ‘부차적’인 것일 뿐 ‘전공’이나 ‘주업무’가 되지 못한다. 즉 ‘일을 위한 공부’만 하고 ‘일’에 매진하는 사람에게 도무지 다른 방식의 사유를 안 한다고 탓할 수 있는 것인가 싶다. 공학 마찬가지.

업으로 공부를 했다는 모든 식자들(주로 석사 이상)은 ‘진리 탐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어느 수준까지 가져야 하는가? 아니 무엇이 공부인가? 어떤 공부는 ‘공부’이고 어떤 공부는 ‘공부’가 아닌가? 사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기회들을 서로 만들고 살기는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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