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엔지니어의 탄생

프랭클린협회의 설립자들은 필라델피아에서 번성하던 일군의 기계공작소 소유주들이었다. 그들은 두 가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도서관과 함께 과학과 숙련기술에 관한 공개강좌를 제공해 노동대중이 학습을 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향상시킬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요컨대 현장훈련을 공식화하는 방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의도는 좀더 이기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 배우고, 한때 숙련기술을 신비로 감쌌던 비밀주의의 굴레를 깨뜨리고, 실험을 하고, 실험결과를 발표하고 싶었다. 요컨대 과학자들처럼 행동하면서 ‘기예’(그들이 쓴 표현)를 좀 더 과학적이고 좀더 수익성이 높은 것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246).

해가 갈수록 프랭클린협회(..)가 첫 번째 목적에서는 실패하고 두 번째 목적에서 성공을 거둘 것임이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도제, 직인, 마스터들은 동역학이나 운동학의 원리에 관한 강좌를 듣는 데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후에 깨어 있을 에너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정도에 그쳤다. 반면 기계공작소 소유주, 발명가, 운하건설자, 측량사들은 자기 분야의 최신 발전을 따라잡고 어떤 발명이 최근에 특허를 얻었는지 알아보는 데 대단히 관심이 많았다(246-247).

과학,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과학적 방법은 엔지니어와 장인 사이에 커져가는 사회적 구분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전문직 엔지니어는 장인과 달리 실험, 탐구, 그리고 이론적 숙달이 제공할 수 있는 유연성을 통해 자신의 경력을 향상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247).

루스 슈워츠 코완, [미국 기술의 사회사], 김명진 옮김, 궁리, 2012 중

 

1920년대 미국 산업에서 등장했던 ‘엔지니어’라는 계층에 대한 설명이다. 도제, 직인, 마스터(장인)들이 자연스레 자연과학에 기초한 공학적 지식을 습득해 엔지니어가 된 것이 아니다. 외려 공장의 소유주, 발명가, 건설자, 측량사 등 중간계급 이상의 지식에 대한 탐구가 엔지니어라는 계층을 만들어냈다. 이들 엔지니어들은 ‘기예’로 간주 됐던 것들을 실험을 통해 과학의 눈으로 분석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일련의 ‘프로세스’로 만들어냈다. 이 해설을 따를 경우 엔지니어라는 계층의 형성, 추후에 생겨났던 ‘엔지니어 협회’의 구성원을 함께 보면 결국 이들의 출현은 마스터들을 몰아내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마스터들을 호기심 많은 자본가와 중간계급이 몰아낸 것이 미국 엔지니어 탄생의 과정이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매우 매끈한 해석이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의 경우도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대동소이한 경로를 밟아왔다. 마스터들을 ‘숙련 노동자’로 많이 품고 유지하는 독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한국은 산업화와 근대화가 함께 물리는 상황에서 ‘작업장 엔지니어’를 한참 품어온 역사가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공고 출신 부장’, 즉 관리직 엔지니어가 된 이들이 문제적이다. 작업장 엔지니어들은 1970~90년대 선진 제조업을 방문하여  ‘썰미’로 그네들의 기술을 파악해 한국의 현업에 걸맞게 정착 시켰다.일본 Lean Production 등을 적용해내기도 했다. 한국식 조직문화를 통해 전수체계도 만들어냈다. 1980년대 이후 대거 유입된 ‘대졸 엔지니어’들이 있었지만 ‘작업장 엔지니어들’은 노하우를 통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방어해 IMF 마저 넘어 지금에 이르렀다. 한 세대를 만들어 온 것이다.

‘좀 더 과학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공학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랩실 엔지니어들’이 모든 산업에 쏟아진지 10년이 좀 넘은 지금. ‘작업장 엔지니어들’은 ‘장인’처럼 대체될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기예’는 어떠한 방식으로 ‘공식화’시켜서 ‘랩실 엔지니어들’의 자양분으로 줄 수 있을까? 만약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들의 ‘기예’는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 소통될 수 있을까? 구전 밖에 없는 것일까?

edison-thomas-alva-1121847-18101931-american-inventor-engineer-half-B5M4E0<figcaption class="wp-caption-text">마지막 발명가 엔지니어였던 GE의 창업주 토마스 에디슨</figcaption></fig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