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에런라이크의 몇 가지 복음

‘배신’ 시리즈 끝

<노동의 배신="">(처음에 읽었을 때는 <빈곤의 경제="">)부터 <긍정의 배신="">을 읽고 2년 지나 <희망의 배신="">을 읽었다. 저자가 생각한 순서대로 읽으려면 <노동의 배신=""> => <희망의 배신=""> => <긍정의 배신=""> 순으로 읽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니면 <희망의 배신="">을 제일 먼저, 그 다음에 <노동의 배신="">을 읽는 것도 방법. 어디가 더 다급한 이슈로 보이는지를 생각하면서 집으면 될 것 같다. 바바라 에런라이크의 장점은 바로 모든 게 ‘현장 기록’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주는 단점으로 편향성을 들 수 있겠지만, 그 편향성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만큼 에런라이크는 합리적이고 폭 넓은 시야로 분석을 한다. 이렇게 쓸 수 있는 사회과학 저자를 더 대보라하면 나는 나오미 클라인만 떠오른다. **아직 겁을 집어먹지 않은 부장님들에게** “그들은 ‘만사를 올바르게’ 해 온 사람들이다. 철학이나 음악에 대한 젊은 열정을 접고 꾹 참고 경영과 금융 같은 지루하고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했다. 너무 눈부신 성과를 올린 게 비극의 씨앗이 된 경우마저 있다. 연봉이 너무 올라가는 바람에 비용 절감에 혈안이 된 기업의 눈 밖에 난 것이다.”(p.9) “노력의 보상이 드문드문 주어지는 지금의 삶, 열심히 일하고도 정리해고를 당하는 과정을 계속 되풀이한 끝에 결국엔 나이 탓에 완전히 밀려나는 이런 삶에서는 더 강력한 설명이 필요하다. 삶을 결정짓는 제도적 힘, 예측 불가능한 경력의 상승과 하강을 설명하려면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세심한 신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p.181) “예전엔 사람들이 작은 사업을 스스로 시작했지만 요즘은 (..) 일종의 ‘조립식 사업’을 구입할 수 있다. 매월 로열티를 내고 재료, 판매 상품은 물론 운영 절차까지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공급받는다. 미국에서는 약 40만 명이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고용 규모는 800만 명이다. (..) 모든 분야에서 프랜차이즈 사업이 이루어지며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 가맹점의 생존율은 겨우 25퍼센트, 평균 수입은 약 3만 달러다.”(p.232) “하향 이동으로 사회가 얻는 보충적인 가치가 무엇이든 간에 생존용 일자리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교육 받고 준비해 온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파괴적인 경험이다. 마오쩌둥이 이식한 사람들은 더 훌륭한 시민이 되지 못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원망을 새겼다. 더군다나 수입과 지위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 심각해서 하향 이동은 실패, 거부, 수치심을 동반한다.”(p.263) 아직 사회로 ‘튕겨나가게 될 날’이 좀 남아서 걱정 안 하고 술만 퍼드시는 부장님들께 바치는 멘트. 이렇게 빡세게 공부하고 일 해도 결국 닭 튀기게 된다구요. 3년 안에 49.2% 폐업, 평균 생존 2.7년, 미국의 해고된 화이트컬러들의 생겨먹음과 그들이 하게 되었던 2000년대 초반 프랜차이즈 사업은 한국에서 회사에서 잘린 화이트칼라 계층의 지금이다.  미국의 프랜차이즈 산업과 한국의 치킨집을 비교해 보면 될 듯. **아직도 기업 세계가 만만해 보이는 명문대 대학원의 친구에게** “내가 들어선 기업 세계에는 이런 식의 미학이 온갖 곳에 침투해 있는 듯했다. 문장 서술 없이 항목만 나열한 이력서, 모텔과 비슷한 고속도로변의 교회, 계산된 미소, 관능을 억압하는 복장, 엄밀한 지시서, 수많은 슬라이드. 이 완벽한 도구주의의 영역에서는 그런 것이 통했다. 일을 진척시키고, 마감 시한을 맞추고, 예약을 하고, 제시간에 지시가 전달되도록 만든다. 그런 것들이 카펫을 얼룩 없이 깨끗하게 유지한다. 하지만 잃는 것도 있다. (..) 생소함과 신비의 차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p.173) “실은 일단 기업 세계에 들어간 뒤 극적으로, 완전히 자발적으로 퇴장하는 장면을 고대했었다. 처음 세웠던 계획에서는 취직해서 서너달 정도 (..) 일을 한 다음 어리둥절해하는 고용주에게 더 나은 것을 향해, 그러니까 진짜 내 인생으로 떠나면서 ‘안녕’이라고 말하기로 되어 있었다. (..) 그런데 이제는 프리랜서가 전적으로 내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p.254) “마이어는 출판업계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한 친구의 사례를 들었다. 영문학 박사 학위가 있으며 몇 년간 대학에서 강의했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라고 했다. “그 탓에 그 사람은 결코 주류 속에 들어가지 못했다.”(p.268) 한국에서도 2014년 현재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요새처럼 ‘공채’를 뚫기가 힘든 상황에서 기업 세계가 만만하게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의 현학에 빠져서, 사회과학의 대상없이 휘두르는 비판의 무기가 너무 절대적으로 보여 기업 세계를 ‘허수아비’로 만들면서 후려치는 경우를 참 많이 봤는데. 그냥 ‘신자유주의’적인 탐욕적 자본주의를 후려친다고 해결되는 건 별로 없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엔트리에 들어가기 위한 이 싸움에 대해서 좀 더 정교하게 봐야지.. ![](https://31.media.tumblr.com/59f0555fa0788b128b19bf66ac6e68a0/tumblr_inline_nb0tvyflo61slcohs.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