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치학을 공부했을까? - 수업에서의 정치학 (2006년 글)

<FONT size=2>경직되어있던 수업. 그리고 탈출구</FONT>

 2002년 첫학기 첫수업은 월 56 수 4교시의 현대정치사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언젠가 사진을 올린적도 있었지만, 신복룡 교수의 수업이었다. 그의 첫마디 물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수업을 빼고 1학기의 수업은 나에게 그리 영감을 주지 못했다. 딱딱한 강의와, 아무도 발언하지 않고, 아무도 논쟁하지 않는 수업은 내게는 오히려 고문에 가까웠다. 1차적으로는 아무도(이 말이 위험하다 해도 나는 다른 표현으로 바꿀 생각이 없다.) 교재를 제외한 참고문헌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2차적으로 수업 자체가 주입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당시 내가 듣던 전공과 관련 수업은 다음과 같았다.

 국제정치학 – 소치형
 비교정치학 – 백영철
 현대정치사상 – 신복룡
 서양정치사상1 – 황주홍
 서양정치사 – 김종헌

물론 여러가지 면에서 수업들의 장단점이 있다. 그리고 강의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것과, 학생들이 가져가야 할 것에 대한 명료한 판단하에 그것들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 되는 것이고, 그 답은 복수이다.

우선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건데 당시 나는 내가 ‘얻어야 할 것’과 내가 ‘갖고 싶은 것’에 대해서 단단히 착각을 하고 내가 ‘갖고 싶은 것’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얻어야 할 것’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내용적으로 수업자체가 내 관심사를 채울 수 없었다고 해서 그것들에서 지금까지 간직할 무언가 하나가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그 때는 나 역시 수업을 듣는 학생으로의 자질 자체는 많이 결여되어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 자체가 너무나 진부했던 측면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당시 국제정치학 수업은 이미 여러 측면에서 공격받아 누더기가 되어버린 Kenneth Waltz의 신현실주의와 Hans Morgenthau의 고전적 현실주의적 관점이 지배적인 그러한 교재를 통해 진행되었다. 다른 이론적 저술에 대한 언급 따위는 없었고,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대립적 구도하에서 “현실주의”의 ‘현실성’을 통한 우위에 따른 현실의 분석만이 전부였다.

잠깐 다른 이야기지만,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양대산맥은 위에서 언급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아닌,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양대패러다임하에 구조주의를 위시한 좌파이론들이 한 둥지를 틀고 있고, 그 이론들의 전제 자체에 의심을 품는 구성주의적 경향들이 나름의 입론을 펼치고 있다. 물론 어떤 이론이 가장 ‘설명력’을 갖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현실주의’나 ‘자유주의’ 혹은 ‘구조주의’가 가장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식론적 문제들(어떤 것이 진리를 담보하는 가? 진리를 확증하는 방법은 어떻게 입증될 수 있는가?)에서는 오히려 구성주의적 입장이나,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간 포스트 구조주의적 경향(네그리, 들뢰즈의 방법론)이 더욱더 강한 이론이다. 하지만 나에게 수업은 그런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최소한 2년을 국제정치학 자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머릿속 깊이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국제정치학을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생각에 스터디를 했었다. 역시 후배들에게서도 Robert W. Cox나, Antonio Negri, Alexander Wendt등의 이론들을 함께 이야기 할 때, 그들은 낯설어 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에서도 최소한의 이론적인 이야기를 알 수 조차 없었던 것이다.)

비교정치학 수업은, 기존의 권력 담론(Max Weber나, John Locke, John Stuart Mill 등의)과 권력 체계(정치 체계론), Sartori의 정당체계론, 백영철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던 이들은 기억하겠지만 민주화론과 종속이론, 세계체제론 등을 강의했다. 위의 국제정치학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언급했지만, “국제정치학”이나 “비교정치학” 등의 sophomore 즉 2학년에게 강의하는 원론과 비슷한 세부 전공의 강의는 최대한 정교한 이론들의 현황들을 인지하게 하고, 그것들에 숙달하게 하여 현실을 바라보는 데 어떻게 적용하는 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따라서 최신의 이론들의 경향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강의노트로, 30년이 지난 이론을 최신이론으로, 최근의 경향으로 40~50년이 된 논의들을 싣는 이상, 수업 자체의 내용은 진부한 것일 수밖에 없었고, 흥미 유발 자체는 어려웠다. 언제부터 타고난 학생이 있었는가? 타고난 학생은 선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밖에 수업들에서도 크게 영감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른 경험 역시 있었다. 그건, 보통 내가 다니던 건대 정외과의 여타의 학생들이 그랬지만, 신복룡 교수의 수업을 듣을 것에서였다.

현대정치사상의 수업은 홉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회계약론자들, 그리고 밀(John Stuart Mill), 칸트, 헤겔, 맑스, 이후 레닌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논의를 차근 차근 옛날 이야기하듯 짚어가는 선생님의 수업이었다. 물론 이 수업이 어떤 상호작용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알고만 있었던 옛 사상가들을 할아버지가 손주를 앉혀놓고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듯 풀어내는 강의는 내게 너무나 좋았다. 또한 자신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듯, 그것들을 함께 엮어내는 수업은 ‘극’적 효과를 자주 연출하고는 했다.

하지만 내게 더욱더 컸던 것은,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읽어봄직한 책들에 대한 소개였다. 40여년은 족히되었을 007 가방에 책을 잔뜩 가져오셔서는, 그 책에 대한 감회를 밝히고, 일독을 권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마치 구슬 주머니를 가지고 와서 흐뭇해 하는 어린아이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천진한 선생님의 모습에서 그가 권하는 책들을 모조리 읽기 시작했다. 가깝게는 “체게바라 평전”(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에서부터 멀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까지.

언제나 책을 손에서 놓지않고, 그 경험을 눈에 선하게끔 보여주는 선생님의 모습은, 한 학자가 학생들 앞에 서기위해서 어떠한 준비를 해야하는 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내가 학자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품게한 첫번째(하지만 마지막일 수는 없는) 모티브를 제공했다. 신복룡 선생님의 수업은 나에게 유일하게 탈출구를 제공했었다.

지금 돌아봐서 생각하자면, 백영철 선생님의 수업은 지금에 와서 다시금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학에 문외한인 상태에서 듣기에는 좀 난해한 감이 있다. 맥 자체가 잘 안잡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진부함에 대한 것만 잠시 접어놓는 다면, 그의 수업이 보여주는 Quality 자체는 어디에도 놓아도 손색 없을 만한 것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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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FONT>

2002년 대학 2년의 내 모습은 패배감과, 약간의 탈출구가 보일 듯 말듯한 그런 상황에 휩싸여 있었다. 여러가지의 가능성이 보였으나, 그것들을 내가 다 해보기에 내 여건은 엉망진창이었다. 우선 그것들을 풀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소통할 수 있는 사람조차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김주원이나, 신희철 선배 정도 였다. 그리고 수업 자체에서 얻는 영감의 통로자체가 한정되어있었고, 번번히 내가 가지고 있던 발상은 ‘개소리’로 치부되곤 했기에 내 답답함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탈출구는 나름의 독서와 나름의 소통로를 직접 발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고, 그 나름의 해답중 하나가 제2대학이었고, 학회 운동하는 이들에 대한 갈구였다. 막연한 마음에 했던 일 들 중 재미있었던 것은, 이진경(現 산업대 교양학부 교수) 선생과 진중권(現 중앙대 연구교수)에게 E-mail을 했던 기억들이다. 다급한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내면 그들이 얼씨구나 하고 답변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으나, 아쉽게 그들에게 답변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만약 그들이 나에게 ‘지적 자극’을 줄만한 대답을 했었다면 어땠을 까?  한발 더 나아간 내 모습이 갖추어 졌을까?

여러 이야기들로 2002년의 이야기를 접으며, 그 때 내가 읽었던 책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칼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주의 선언”, 박종철 출판사
칼 맑스, “경제학 철학 초고”, 박종철 출판사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배제서관
조국,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책세상
노서경,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책세상
탁석산, “한국인의 주체성”, 책세상
탁석산, “한국인의 정체성”, 책세상
김동훈,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책세상
이나미,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책세상
조세현,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책세상
조영래, “전태일 평전”, 돌베게
장 코르미에, “체 게바라 평전”, 실천문학사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한겨레신문사
노엄 촘스키, “불량국가”, 두레
노엄 촘스키,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아침이슬
노엄 촘스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모색
김원,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이후
조지 카치아피카스, “신좌파의 상상력”, 이후
김규항, “B급 좌파”, 야간비행
조성오, “철학 에세이”, 돌베게
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 푸른숲
임지현, “이념의 속살”, 삼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삶과 철학”, 동녘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박종철출판사
레닌, “제국주의론”, 백산서당

물론 그 외에도 강준만의 책을 당시에는 상당히 많이 읽었다. 하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 책들이 대체로는 시의성에 충실한 시사평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진경이 80년대에 썼던 모든 책을 다 읽었지만 굳이 쓰지 않는 건, 그 책들 또한 당시의 정세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책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1987, 아침)은 일독을 권한다. 맑스-레닌주의적 색깔로 식민지반봉건론(식민지반자본주의론를 포힘해서)을 공격했던 점은 사회구성체논쟁이라는 특정 정세를 반영함이지만, 학부 4학년이 썼던 점을 감안한다면(출판은 그의 석사1학기 떄이다.), 우리의 지적 나태함을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수 있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교재도 뺐는데, 교재는 시험을 위해서라도 한번은 볼 거라는 생각에서다(물론 써머리만 보고 시험을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다만 비교정치학이나, 국제정치학을 공부한다면 다음의 책들은 학부 저학년 때 한번씩은 봄직하다.

박건영 외, “현대국제관계이론과 한국”, 사회평론
박건영 외, “한반도 평화보고서”, 한울
존 베일리스 외, “세계정치론”, 을유문화사
손호철, “근대와 탈근대의 정치학”, 문화과학사
로널드 칠코트, “비교정치학 이론”, 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