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도시의 남성과 여성 – 가족과 네트워킹

이제는 소멸해버린 것 같은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아직 산업도시에 존재한다. 내부의 가부장제는 강고하게, 단 특이하게 지역사회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물적 토대는 흔들리고 있고 이제 또 다른 파멸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남자가 혼자 벌어 4식구를 먹여 살린다. 여자는 2명의 성장기 아이를 대학교를 마칠 때까지 키운다. 남편은 조직생활을 하고 아내는 살림살이를 한다. 남자는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고 여자는 사적 영역에서 활동한다.”

자유주의 여성주의자들이 규탄하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다. 비정규직이 전체 임노동자의 절반을 넘기고(원래 넘겼지만), 40대면 언제든 잘릴 수 있다고 믿게 된 이 시절. 남자 혼자 벌어선 자산(stock)의 차원에서 보면 가계 유지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당장의 소득(flow)의 문제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여성의 임금노동 참여는 필수가 됐다. ‘육아’와 ‘가사노동’이 첨예한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한 이유다.

이런 모양새는 2차 산업이 없는 서울을 대표한 대도시에서만 주로 타당하다. 산업도시를 보면 여전히 남성생계부양자라는 물질적 토대(base)와 그에 따른 가부장적 가족모델(upper structure)로 돌아가는 곳이 많다.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노동자들 덕택이다. ㄱㅈ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울산도 비근하지만 이미 훨씬 다양한 종류의 산업이 진입해서 2차 산업 위주 도시라고만 볼 수 없는 특징이 많다(예를 들어 남구).

# 그 남자들의 ‘가족’

ㄱㅈ시를 살펴보자면 대강 생산직 평균 소득은 0,000만 원 내외다. 물론 생산직은 99% 남성이다. 사무직을 포함해도 90% 가량이 남성이다. 다른 산업이랄 것은 없다. 요식업과 여행관련 산업이 있지만 전체에서 차지하는 매출은 미미하다. 여느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들이 그렇듯 기본급은 적고 수당은 세다. 대의원들과 반장들은 특근(over time work)을 물어와야 그 소득을 맞춰줄 수 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특근하지 않고 기본급만으로 사는 게 추세지만, 일을 하는 게 집에서 마누라와 아이들과 있는 것보다 편한 40대 이상 노동자들은 특근을 많이 따오려 한다. 집 안에서의 위세를 좌우하는 것이 두둑한 월급봉투임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기본급과 특근을 합쳐 0000 만원 가량, 반장이 되면 0000만원 가량을 수령한다. 퇴직하기 몇 년 전부터 임금피크가 들어가지만 ‘보임’을 맡으면 임금피크는 무력화시킬 수 있다. 간접생산직 자리의 반장을 맡기 위해 이러저러한 ‘작업’이 벌어진다. (사무직은 기본급이 높고 연봉제를 채택한 경우가 대다수다. 안정적인 0000만원을 특근 없이 획득한다.)

연 0000만 원의 소득을 쥐고 있는 남자들이 많이 소비를 하는 부문은 술과 레저 활동이다. 부서회식(반이나 팀)이 여전히 한 주에 1회 정도 벌어지는 것이 일상이다. 서울 사무직들과는 분명히 차별화된 패턴이 보인다. 레저 활동은 주로 ‘동호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부부동반’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대개의 경우 회사에서 맺어진 유사 가족관계(형님-동생)들에 의해 전개된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부서내 레저활동이 많기도 하다. 직원간에 서로 붙이는 ‘가족’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고 ‘식구’라는 말은 매일 세 끼를 같이 먹기 때문에 정직한 진실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회사 식당에서 아침을 함께 먹고 점심을 함께 먹고 술집에 가서 저녁을 함께 먹는다. 집에 사는 가족과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하루 1끼를 잘 먹지 않는다. 주말에나 간신히 한 두 끼 먹을 따름이다. 아이가 10살이 넘으면 아이와 놀아주는 재미도 시들해져 아이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성적을 가지고 하는 훈계 정도나 했던 남자들이 수두룩하다. 사실 남자들에게 재미있는 건 회사 사람들과의 생활이다.

회사가 전부고 회사가 일 뿐 아니라 삶이기도 하다.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 모호한 지점이다.

# 그 여자들의 ‘네트워킹’

90%의 임금노동을 남성들이 하고 있고, 10%의 노동도 기혼 여성에게 잘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여성들은 보통 서무로 취직해 20대를 보내고 정규직 남성을 잡아 결혼을 한다. 출산과 더불어 퇴직을 한다. 풀타임 가정주부가 된다. 경제적 여건이 된다는 전제에서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것은 예전보다 낮은 육아와 가사노동 시간을 만들어줬다. 서울에서 중상계급 이상 남자의 집안에 ‘취집’한 여자가 누릴 수 있는 것을 ㄱㅈ시에서는 정규직 남편이 있으면 할 수 있다. 아이는 어린이 집에 보내고 자신은 남편의 회사가 열어놓은 ‘아카데미’ 등 문화센터에 가면 된다. 꽂꽂이를 배우고 바리스타를 배우고 기타를 배우고 수영을 배우고 서예를 배우고 요가를 배운다. 문화센터에서 만난 서울서 엔지니어 남편을 따라 내려온 ‘서울 언니’를 따라 요새 핫하다는 ㅇㅈ동에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는다. 아이의 어린이집 시간과 남편의 퇴근시간을 고려하면 되는데 보통 남편의 퇴근시간은 많이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술자리에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면 대개 10시가 넘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자녀교육에 대한 ‘매니징’이 특화된 어떤 ‘코스’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고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것이라면 ㄱㅈ시에서는 그보다는 조금은 느슨한 형태의 입시전쟁이 벌어진다. 서울 말을 쓰며 서울의 명문대를 나온 강사 정도면 된다. 별로 고학력이지 않고 정보에 대한 갈구는 있돼 전문성이 떨어지는 여성들은 ‘학원 셔틀’ 정도를 성실히 시키는 것에서 타협을 본다. 그렇기에 더 여유가 있다. 서울에 비해 낮은 집값이 주는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다. 사무직에 한정해 보자면, 여성의 ‘육아 매니징’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형성돼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전문성을 남편들이 덜 인정하는 경우도 많다. 고학력 엔지니어나 관리자 남자가 ㄱㅈ시에서 전문대나 주변 사립대를 나온 여성을 만나 결혼할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남편의 권위는 소득에서 일차적으로 발생하고, ‘지식’에서도 발생하기도 한다.

여성들은 남편들에게 시달리지 않을 시간이 많다. 그 시간을 오롯이 자녀 교육에 쏟기 보다는 여자들끼리의 네트워킹에 많이 쏟는다. 서울위주로 편성돼 있는 정보가 온라인에 범람할 때, 그 외 지역에 대한 정보는 발품을 팔거나 구전을 통해 획득해야 한다. 그렇기에 문화센터를 통해 만난 인맥은 중요하다. 특히나 소득이 많아 돈을 ‘어디에’ 소비하고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 획득이 더 중요해진 마당에서. 부동산에 ‘촉’이 좋은 여성들의 구전이 떠돌아 다니고, 인근 쇼핑센터와 맛집에 대한 정보도 대개ㅐ 이렇게 얻게 된다. 더불어 전통적인 의미에서 ‘같은 회사’에 있는 남편에 대한 ‘내조’를 위해서도 정보 공유는 중요한 일이 되고 남편의 승인을 어느 정도 선에서 얻어낼 수 있다.

문화센터와 언니들의 커뮤니티가 여가일 뿐 아니라 비즈니스이자 가정경제의 일이기도 하다. 가족의 일은 여성들 커뮤니티와 분리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일은 구분돼 있다. 서로는 그 역할을 침범하지 않는다. 여자는 확실한 소득을 집으로 전달하는 남편의 권위를 흔들지 않는다. 남편은 ‘회사일’에 대한 권위를 승인 받는다. 어느 순간 그 ‘회사일’은 사실상 ‘가족의 대소사’의 지위에 올라와 있다. 아내는 ‘네트워킹’에 대한 권위를 승인 받는다. 어느 순간 ‘네트워킹’은 ‘비즈니스’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 흔들리는 물질적 토대와 산업도시형 가부장제의 미래

곧 무너질 것이다. 일단 기존 정규직이 무너질 것이다. 1만 명 내외의 사업장들은 절반에 해당하는 사무직 중 15~30% 씩을 쳐내고 있다. 산업의 실적개선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기술문제와 비용문제가 상존한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전망은 별로 없다.

[매일경제]적자 현대중공업 1500명 구조조정… 전체 직원의 5%

[조선일보] 대우조선해양, 나홀로 흑자 행진.. 대규모 손실 우려는 ‘여전’

다른 한 편, 모두가 정규직인 것으로 가정하고 운영되는 일터와 삶터의 모델과 별개로 이미 비정규직인 사업장의 절반 이상을 점하고 있다. 한참 아이를 키우고 장성하고 있는 40-50대들에게 정규직인 많을 뿐, ‘젊은 이들’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훨씬 높은 차별에 노출돼 있고 연애와 결혼에 장애를 느끼고 있다. (“직영이시죠?”가 소개팅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질문이다.) 이주여성과의 결혼도 급증하고 있다.  결혼한 기혼자 부부에서 비정규직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고, 동시에 비혼자 1인 가구와 ‘품팔이’를 위해 온 나이든 노동자들이 늘어날 것이다.

안정적인 남성생계부양자의 ‘스윗홈’이 드문 일이 될 것이다. ㄱㅈ시의 두 회사는 정규직 숫자를 늘릴 계획이 없다. 산업의 수축기는 결국 도시를 황폐시킬 것이다. 산업도시에서 만들어진 ‘때늦은’ 가부장제는 어떠한 방식이든 와해될 것이다.

여기서 섣부르게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불만의 증가가 더욱 더 ‘성차별적’인 도시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대안적’ 가구가 생겨날 수도 있다.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ㄱㅈ시는 지금도 광범위한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 ‘스윗홈’이 포괄하지 못하는 음지에선 ‘우범지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에 처음 느꼈지만 ‘고학력자 여성’, 즉 산업도시 가부장의 딸들이 잘 내려오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 하나를 주지시키면서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도시가 주는 자유’가 없이 모두가 ‘식구’들인 산업도시에 딸들이 오지 않으려 하는 정서에 대한 이해가 아빠들에게는 없다. 이젠 그걸 간파한 도시에서 자란 ‘젊은 남자들’도 오지 않으려 한다. 결국 ‘생산’을 버리고 ‘엔지니어링’을 택하게 될 상황에서 산업도시는 황폐화할 것이다.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곧 오게 될 재생산의 위기. 그게 산업도시의 가부장제의 미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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