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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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VERTICAL-ALIGN: top" align=left><A class=aladdin_title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1372&ttbkey=ttbpanic822253001&COPYPaper=1">우리는 사랑일까</A> – <IMG alt=10점 src="http://image.aladdin.co.kr/img/common/star_s10.gif" border=0>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은행나무</TD>
<IMG alt="" src="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56601372_1.jpg" border=0>

2년만에 다시 잡은 알랭 드 보통

2009년이 밝았고, 28살이 되었다. 올해에는 책들을 작년 2008년처럼 사지 않을 계획이고, 살 수 없을 전망이다. 일단 English에 올인해야 할 이유가 생겼고, 영어로 쓰여진 책들을 읽을 계획이기도 하다. 또한 제대(2009년 6월 30일)를 하고 나면, 아마 책을 살 수 있는 형편이었던 군생활 동안보다 재정적인 압박도 심해질 예정이다.

그래서 올해에는 많은 책을 읽기보다 되새겨 읽기에 더 많은 신경을 쓸 계획이다.

2007년 새해가 되자 마자 처음 잡았던 책을 다시 잡았다. 그 때의 감성과 지금의 감성은 판이하게 다르고, 그 당시에 나에게 산적했던 문제와 지금 내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드는 문제는 다른데. 따라서 그 때 명료하게 머리 속에 저장되어있지 않았던, 다른 생각들과 다른 지금의 내 처지가 이 책을 달리 읽게 만들어 준다.

며칠 전 만났던 사람의 입에서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날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알랭 드 보통 알아?”라고 물었고, 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녀의 이어지는 대답은 “아니, 그거 말고 <우리는 사랑일까?>”였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일까?>를 다시 읽었다. 하찮은 이유였을 지 모르나, 마침 읽을 책도 마땅치 않았다. 덕택에 올해의 첫 책이 알랭 드 보통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책을 다시 잡은 소박한 이유와 달리 이 책은 내가 찾던 ‘글’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했다.

출처 : www.bbc.co.uk

책을 읽고 그의 홈페이지(http://www.alaindebotton.com/index.asp)에 다녀왔다. 정갈하게 늘어놓은 7개의 상자가 눈에 들어온다.

41살의 나이, 벗겨진 머리, 짙은 속 쌍꺼풀, 그 안에 담겨있는 우수에 젖으면서도 익살가득한 눈, 또 웃음주름이 져있는 외모와 그의 글쓰기 스타일과 그의 감각적이 홈페이지의 느낌. 그 모든 것들이 그의 저작과 함께 마주친다.

얼마 전 김애란과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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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178" target=_blank>2008/11/06 – [Book Reviews/Literature] – ‘엄마의 달콤함을 기억하는 그녀’의 자취방에 들어가고 싶어 – 김애란, 침이 고인다</A>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164" target=_blank>2008/10/20 – [Book Reviews/Literature] – 구슬픈 밤, 잠들지 못한 눈들을 위한 진혼곡 –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200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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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살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세상을 간결하게 정의할 수 있는 ‘이론’의 세례를 받았던 나는 세상의 모든 모순을 몇 가지 되지 않는 것들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고통’과 ‘근심’, 우리 아래층 아저씨와 우리 아빠가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조차도 몇 가지의 쉬운 사회과학적 개념을 통해서 설명하려 들곤 했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 다른 계급으로 자라난 것이고, 같은 계급일 지라도 서로 자란 ‘계급 의식’의 고양 수준(!) 때문에 그런 차이들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김연수와 김애란의 책들을 읽으면서 그러한 단순한 생각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 해석과 뒷따른 폭력적인 행위들을 만들어내는 지에 대해서 느끼게 되었다.

국가는, 그리고 사회는 그들에게 밥을 먹게 해줄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개개인’이 갖고 있는 환원되지 않는 ‘취향’의 차이, 그리고 ‘실존’의 차이 앞에서 무력하다.

그것은 ‘기억’의 세계이고, 물론 ‘집단적’으로 형성된 것일 수 있으나, 남산 타워 밑에서 아이스크림을 흘렸을 때 엄마와 눈이 마주친 아이의 심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기력하다. 이정희라는 모던껄을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진 김해연에게 닥친 이정희의 죽음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

물론 그러한 무기력 때문에 세상에 대한 ‘변화의 갈망’이 무력화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나 역시 그러한 변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다. 문제는 그 내밀함들을 ‘환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로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으로 만들려는 시도에 있다. 저항의 메시지는, 변화의 메시지는 그것들을 하나의 용광로에서 다 녹여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꽃들이 다채롭게 피어날 수 있는 땅의 기운과 바람의 힘을 통해서만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어냈다.

당신이 바라는 사랑? 내가 원하는 사랑? <우리는 사랑일까?>

자신을 장악해줄 멋지고 근사한 남자와의 ‘연애’를 꿈꾸는 앨리스. 그가 꿈꾸는 건 다시 말하지만 ‘근사한 남자’보다는 근사한 남자와의 ‘연애’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누가 말했던가? ‘관계중독증’. 자신이 느끼는 충일감보다는 바깥에서 보았을 때 만족스러운 그런 연애를 꿈꾸는 여자.

사랑을 사랑하는 연인은 단순히 X가 멋있다고 여기지 않고, ‘X처럼 멋진 사람을 찾아냈다니 대단하지 않아?’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에릭이 배터시 다리 중간에서 걸음을 멈추고 구두끈을 맬 때, 앨리스는 ‘구두끈을 매는 모습이 귀엽잖아?’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귀엽게 구두끈을 매는 사람을 찾아내다니 이게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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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에게 건들거리면서도 결코 찔리지 않는 남자 에릭이 다가온다. 그리고 연애는 시작된다. 알랭 드 보통이 섬뜩할 정도로 예리한 건, 그의 ‘역사성’에 대한 발언 들이다. ‘역사성’보다는 ‘몸과 마음’의 ‘기억’이라고 해야할까?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일은 어찌 보면 과거에 같이 잔 사람들의 습관이나 기억과 충돌하는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방식에는 우리의 성생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키스는 과거에 했던 키스들의 종합형이고, 침실에서 하는 행위에는 과거 거쳤던 침실의 흔적이 넘쳐난다.

앨리스와 에릭이 사랑을 나누는 사이, 두사람의 성생활 역사가 만났다. …… 순전히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성생활의 역사가 있는 편이 바람직하겠지만, 심리적으로 그것은 복잡 미묘한 영향을 미쳤다. 성생활 역사가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과 성행위를 했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을 차거나 그 사람에게 채였다는 뜻이었다. 좀 어두운 면에서 보자면 섹스 기교의 역사는 실망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pp.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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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 지를 모르는 여자는 ‘모두다 원하는 것’들에 대한 표상-이를테면 유행하는 옷, 구두, 백-을 소유함으로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고, 누가봐도 ‘번듯해 보이는’ 그 남자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 거다. 그녀는 그 남자와의 내밀한 교감보다는 그 남자가 같이 가자고 했던 ‘썩 잘나가는 레스토랑’에 그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 남자의 무심한 태도를 ‘무심함’이라는 그 남자의 속성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본인의 ‘결핍’으로 환원해버리고 만다.

보바리 부인은 연애 소설을 읽었고 현대의 몽상가인 앨리스는 잡지를 읽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있었다. 양쪽 경우에 다 소설과 잡지가 더 매혹적인, 다른 세상으로 난 [상점의] 창 구실을 했고, 특별히 발달된 현혹적 ‘사실주의’ 형식을 구현함으로써 욕망을 자극했다(p.102).

잡지는 너절한 사실주의를 모방함으로써 이런 유희를 최대한 추종했다(p.103).

진열된 의상들은 ‘유행’과 ‘퇴출’의 이원론상에서 떠다니며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정신분열증적 질서 속에 존재했다. 패션은 집과 같아서 들어갈 수도 있고 쫓겨날 수도 있다는 비유는 중요하다. 어느 달에는 약간 나풀거리는 소매와 깊이 팬 목둘레선과 부드러운 옷감만을 선택해야 했다. 복잡한 인도풍 단추와 긴 머리를 틀어서 큼직한 핀을 꽂은 머리 모양은 적당한 곳에서 신중한 칭찬을 받았다. 보석류는 퇴출당하고 여자들 사이에 남성용 시계가 유행했으며, 긴 드레스는 퇴출당하고 데님이 유행했으며, 캐시미어는 퇴출당하고 실크가 유행했다. ……

그런 문제의 결론은 정면으로 오지 않고, 취향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1000개나 되는 모세관으로 졸졸 새어들었다. …… 물건 자체에는 변화가 없지만, 지금은 우아한 카디건도 시장에서 그 반동성이나 허위를 폭로하는 디자인이 나타나면 그 자리를 빼앗길 수 있었다(pp.104-105).

</BLOCKQUOTE>하지만, 사랑은 <연애의 목적="">에서의 ‘섹스’로의 환원 혹은

<연애, 그 참을수 없는 가벼움>에 나왔던 것처럼 그냥 생활 너절함 그 자체일 수도 있을 만큼 ‘현실적’인 거다.

그치지 않을 것 같아보였던 외로움에 의한 호소. 그리고 공명. 그것에서 ‘사랑’이 탄생하는 데…

한국의 남자들 상당수와 연애하는 여성들이 구태여 그놈의 ‘혼전순결’을 종교적 차원이 아닌, 연애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이야기하는 까닭들이 생각이 난다. 재수 없는 이야기지만, “잡힌 고기에게 미끼는 없다”는 이야기. 에릭이 딱 그렇다. 본인은 작업을 성공했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버린 그녀는 아무래도 자신에게 맞춰야 할 상대로 취급한다는 거.

‘아차’ 싶었을 때, 앨리스는 그 남자와의 대화를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대화 불능.

그러면 감정의 옷 입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른 속, 상징적인 생식기의 약함, ‘당신이 필요하다’는 엄청난 비밀을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만든 옷장 전체로 이루어진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조종할 수 없는 사람, 곧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시시덕거림으로써 우리를 미치게 하거나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에릭은 연애를 할 때마다 이중 안감을 넣은 양복으로 옷장을 채웠다. 사랑이 대들보가 아닌 삶, 행복의 토대를 자율이 아닌 다른 것에 양도할 필요가 없는 삶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에릭은 무게를 폭넓게 분산했다. 여자 친구를 몇 명씩 유지하는 것[거절을 당하더라도 곧바로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위험을 줄이려고], 어느 집단이 등을 돌려도 생존할 수 있게 충분히 많은 집단과 교제하는 것, 어느 거래가 실패해도 견딜 수 있게 돈을 많이 버는 것 등이 그 남자가 세운 기둥들이었다(p.137).

에릭은 육체의 욕구는 잘 받아들였지만, 감정의 욕구는 이런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편이 익숙했다. 그 남자는 앨리스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는 감기나 독감에 걸렸다거나 등이 아파 죽겠다고 말했다. 이런 행동 뒤에 있을지 모르는 진짜 아픔을 인정하기보다는 그쪽이 편했다(p.140).

</BLOCKQUOTE>항상 너무나 얼굴에 빤히 누구를 좋아하는 지가 드러나는 이에게 친구들이 권하는 방법. ‘분산’ 분산과 ‘올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문제는 ‘나’다.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지의 여부에 따라서 사랑의 권력관계는 재편되기 때문이다. 벌벌 떨면서 상대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할 수록 권력은 그에게 넘어간다는. 물론 반대로 그 끈을 놓아버리면 어느 정도 임계치까지 권력은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스탕달식 진리는 여기서 드러난다.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연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어떤 유형의 연애를 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해보는 건 둘째치고, 내가 도대체 원하는 게 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녀는 ‘나를 찾고’ 싶었다. 자기 이야기여야 했고, 복잡하고 설령 문법에 어긋난 문장이라 하더라도 그런 야심이 담겨 있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어떤 것을 느끼는지, 왜 사랑하는지, 왜 미워하는지, 왜 좌절하는지, 왜 행복한지 더 잘 알고 싶었다. 여자란 무엇이며 남자란 무엇인지, 두 사람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 왜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지 알고 싶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녀의 경험을 조명하는 이야기, 분주한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사랑과 의미를 추구하는 이야기, 그리고 어쨌거나 그들의 운명이 꽤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p.246).

올랭피아는 전혀 달랐다. 수줍어 움츠린 기색 없이, 자신 있고 스스로의 욕망을 잘 아는 여성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일을 먼저 시작하는 사람은 남성 관객이 아닌 그녀일 것 같았다. 눈과 입에 담긴 표정으로 봐서, 그녀는 크기나 솜씨에 대해 [그녀에게는 재미있고, 남자에게는 당황스럽게] 한두 마디 농담도 할 것 같았다(p.281).

에릭이 지닌 여성 혐오의 밑바닥에는 그런 영상이 있었다. 보살펴주는 이에 대한 두려움, 권능 있는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그런 영상에서 풀어주기라도 하듯, 다른 영상도 있었다. 어머니에게 소리쳐서 복종하게 만드는 아버지.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온순해졌다. …… 에릭은 독립적이고 강한 여자들이 이렇게 움츠러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케케묵은 가부장적인 태도를 취하면 여자들은 쉽게 순해지고 연약해졌다. 자신의 의도가 어떠했든, 여자친구가 얼마나 많든 상관없이, 에릭은 이성을 상대할 때 개인사에 의지해 두 장대에 걸린 줄에 매달렸다. 한편에는 보름달처럼 얼굴이 둥근 어머니가, 다른 편에는 사나운 남편 앞에서는 물렁해지는 똑같은 여자가 있었다(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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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의 생각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A href=”http://flyinghendrix.tistory.com/189” target=_blank>2008/11/18 – [Book Reviews/Social Science] – 진보의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홀로서기 – 전희경, 오빠는 필요없다, 이매진</A>

마치 앨리스의 마음속에서 여러 욕망이 합의를 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필립이 약속을 어긴 데서 생긴 분노가 폭발하려고 대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남자에 대한 감정을 밝힐 수 없다는 자기검열이 있었다. 그러니 거래가 막혔다. 마음 한쪽에서 다른 쪽에게 ‘화를 내도록 허락하겠지만, 네가 무엇에 화를 내는지 알지 못할 때만이야. 너 스스로 화를 내는 진짜 이유를 모르는 동안에만 화를 내도 좋아.’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이는 어느 특정한 영국인이 특정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는 것보다야 일반적인 영국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편이 얼마나 더 쉬운지(p.346).

그녀의 마음은 여러 층을 오르내리는 승강기의 통로에 비유할 수 있다. 한 층의 내용물이 다른 층의 내용물을 부인할 필요가 없었다. 층마다 독특한 일이 일어났고, 승강기는 논리적인 연속성 없이 각 층을 옮겨 다녔다.

파티가 열린 저녁에는 한 가지 모순이 있었다. 그날 저녁 앨리스는 어느 층위에서, 필립이 오든 안 오든 상관하지 않았다. 다른 층위에서는 그것이 너무 마음 쓰여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평소보다 에릭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뜨겁게 사랑했다. 애정이 식은 것을 자각하지 않고자 함이었다. 어느 층위에서, 그녀는 틀림없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열정적인 사랑 행위가 가능한 걸 보면.

 각 층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관련된다는 것이 그저 유감스럽다…(pp.348-349).

</BLOCKQUOTE>결국 정해져야했던 것은 그녀의 마음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언제나 연애에서 정해져야 하는 것은 본인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느 수준에서 소통할 것인지의 여부다. 모든 걸 맞춰가면서 살면 좋겠지만, 어떤 부분은 누적된 삶의 결의 저항 때문에 변하지 않고 인정해야 할 부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차이’가 ‘적대’로 변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덧나지 않도록 사랑의 묘약을 발라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묘약은 몸의 대화 뿐 아니라 ‘마음’의 대화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자신이 갖고 있는 거울에 비춰지는 상대방에 대한 나의 환상으로 그를 판단하고, 그 환상속의 상대와 연애하고, 그 환상과 현실의 상대의 차이를 느꼈을 때 상처받고 헤어지는 것은 아닐런지?

나는 당신을 이해하려고, 당신이 왜 그러는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화가 끓어오르고 울고 싶네요. 모든 게 쓸데 없는 낭비였어요. 하지만 이제 다 울었어요. 다 뒤로 하고 싶어요. 우린 친구로 남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 당신이 헤어진 애인과는 연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지만요. 당신은 그걸 시간 낭비라고 했죠. 그것 역시 마음 아프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p.388).

이것은 어떤 사람이 그러하리라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그가 실제로 하는 행동 사이의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였다 – 실현하고 싶은 욕구와 실제로 실현된 모습의 뚜렷한 차이(p.392).

어떤 친구들은 그녀의 감정적인 순교에 동정을 표했지만, 앨리스의 고난은 그와 다른, 훨씬 의심스런 해석이 가능했다. 과연 보답 없이 사랑하는 것은 정말 비이기적일까? 선물을 받아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선물을 내미는 것은 너그러운 일일까?

앨리스는 에릭에게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지 않았던가? 그녀는 아직도 모자란 듯, 그녀가 뭘 주든 에릭은 퇴짜를 놓을 거라는 생각을 매일 거부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녀가 그 남자를 선택한 것은, 그 남자로 인해 그녀 자신은 실제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만족감을 얻었기 때문 아닌가?(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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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쩌면 개개인의 내밀한 영역이다. 하지만 동시에 항상 ‘상대’가 걸려 넘어가는 권력 관계의 장이기도 하고, 동시에 개개인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모든 면에서 노출시키는 가장 인간의 본원적이 영역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누구든 사랑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물론 ‘연애’라는 관념 자체는 역사적인 발명품이지만), 그것들이 익명화되어 사람들에게 ‘보편’과 ‘특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왔다. 또 기록이 되었다. 그 흥미 때문에 이놈의 ‘사랑’이라는 이야기에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자신의 공부하는 주제들을 다 엮고 들어가 이빨을 세워왔는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다시 그 이야기들을 엮고 버무려 구워서 우리에게 달콤하면서도 뒤끝은 쌉쌀한 시나몬 파이를 선사한다. 그는 수다떨 듯 이야기를 하고 그 재담에 질투를 느끼기 시작했다. 앨리스와 에릭의 황홀한 관계의 시작에서 달콤해하다가, 쌉쌀한 뒤끝을 가지고 여러가지 생각만 남긴 체 책을 여전히 뒤척인다. 이 글이 뒤척뒤척거리게 질척한 이유도 오로지 거기에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생각도 좀 해보는데…

2007년 1월 1일. 난 ‘어제와 오늘’은 있지만, ‘내일’은 없는 그 지난 연애의 잔여물을 털어내고 싶어했다. 새로운 전망은 없고, “내가 정말 원하는 바”에 대한 윤곽이 그려지지 않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 이를테면, 난 여러 개의 기둥으로 안정감을 가지려 설계하지만, 시공과 동시에 나머지 여러 개의 기둥을 헐고 하나만 남겨 위태위태하게 버티다가 무너지고, 다시 설계하곤 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지만, ‘실패’에 덧난 마음에 “사랑에 성공하는 법”이 아닌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법”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사실 어렴풋이 알면서도 그것을 명확하게 외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에게 글쓰기와 읽기가 ‘치유’였는데. 이번에도 치유가 되었으면 좋겠다.

I’m writing and reading to reach you.

<a href=”http://submania.dothome.co.kr/wp-content/uploads/1/ok27.mp3” 01 Love Affair.mp3 />ok27.mp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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