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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해병대 순검 폐지 반대운동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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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있었던 일. 망각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퍼 온다.
링크 1 – “순검폐지 및 명찰색상 변경 논란에 대한 해병대 입장”
링크 4 – “무적해병을 양성하는… 해병대 교육훈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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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9일 ‘김일병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하고나서 ‘병영문화개선’은 국방부에 있어서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리고 아들과 애인과 친구를 군대로 보낸 이들에게도 그러했다. 이제 더 이상 군인을 사람이 아닌 군인 그 자체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2006년의 ‘순검폐지’도 그 과정 안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순검은 “‘그 날의 최종과업으로서 인원의 이상 유무. 청결정돈. 취침상태 및 명일의 전투에 만전을 기함에 있다’ 해병대 전역자라면 누구나 줄줄이 입속에서 웅얼거리는 ‘순검의 목적’이다. 해병대와 해군에서만 사용하는 ‘순검’은 육군에서는 ‘취침점호’에 해당된다. 해병대 순검은 ‘산천초목이 벌벌 떨’정도로 엄정해 해병대 전역자들은 이에대한 아련한 추억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30개월 군 복무시절에는 휴가와 근무를 빼더라도 보통 850회 이상 순검을 받았다. 또 순검은 매일 당직사관이 실시하는데 엄숙한 분위기에서 공식적인 순검이 끝난 이후 암암리에 고참(선임)들이 기수대로 차례로 순검을 내리는 전통이 있다. 이때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조금 따르기도 해 ‘순검’에 대한 기억이 단단히 박혀있을 수 밖에 없다.“
정확히는 해병대는 순검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순검’의 주체를 병사들의 자율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실제 순검은 ‘자율형 점호’로 2006년 1월부터 진행되었지만, 부대 안에서는 별 문제가 없어왔다. 그런데 11월에 갑자기 난리가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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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해병대 전우회’를 비롯한 예비역들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어떤 제도의 전통을 이야기하고, 그것들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일이 분명하다. 그러한 차원에서 보자면, 예비역들의 발언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 만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에서 현역들의 목소리가 진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예비역은 군인사법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현역은 그 영향권 안에서 제한된 발언권 만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현역들은 자신들이 경험했던 1년 간의 ‘병사 자율점호’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내놓지 못한 채, 다시금 전통적인 순검 제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는 것이다. 예비역들에게 아무리 ‘훌륭한 전통’이고 추억담, 웃음을 짓게 하는 기억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시절에 해병대를 경험하는 현역들에게도 과연 그랬을까? ‘해병대 싸대기’는 어떠한가?
군복무를 하는 것은 현역들이었지만, 발언권은 예비역들에게 있었다. 이건 사실 한국의 군대에 관련된 모든 논쟁에서 반복되는 양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부활한 전통적인 순검 제도에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조금 따르기도‘ 했을 것이다. 이는 당시 진행되던 ‘병영문화개선’과 완벽히 역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것을 구타, 가혹행위, 얼차려라고 말하지 않나? 당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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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육군 부대에서는 ‘병영문화개선’의 영향으로 천안함 사태/연평도 포격이 벌어지기 전까지 그런대로 ‘병사 자율’의 분위기와 인권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뿌리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예비역들의 개입으로 ‘병영문화개선’ 자체가 작동하지 않았던 해병대에서 천안함 사태/연평도 포격이 일어난 후의 ‘생활관 생활’은 어떠한 방식으로 변했을까?
예상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2011년의 일이 앞서 언급한 일련의 일들과 상관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