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적’인 인권 교과서 – 앤드류 클래펌, 인권은 정치적이다(2010)

인권은 정치적이다 – 6점
앤드류 클래펌 지음, 박용현 옮김/한겨레출판
# 해외에서 나오는 출판물을 영어 공부 목적으로 읽어본 사람들(‘영어 공부 목적’이 중요하다.) 중에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를 아는 사람들이 족히 있을 것이다. (하긴 나도 ‘영어 공부 목적’이었다.

2009/02/21 – [Becoming George Bernard Shaw] – Tony Wright – British Politics ; A Very Short Introduction)

200페이지가 좀 안되는 분량에, 판형도 딱 카고바지의 건빵 사이즈( 전투복의 건빵 사이즈 )로 만들어놓은 이 시리즈는 각 책의 주제와 유사한 전공의 한국 학부생이 Longman Contemporary English Dictionary 몇 번 뒤척이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게 쓰였다. 아마 영미권에서는 학부 1학년 때 첫 주차 읽기 자료Reading Material로 제공될 공산이 클 것이다. 나는 이 시리즈를 2007~9년 군대에서 읽곤 했는데, 이 시리즈를 읽었던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영어 공부 목적’이기도 했고 이 시리즈를 무려 5천 원에 한 권씩으로 덤핑 세일을 어떤 대형서점에서 했었기 때문이다. # 『인권은 정치적이다』는 『Human Rights:A Very Short Introduction』(2007)의 번역판이다. 책을 옮긴 박용현은 한겨레 기자이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번역판에서도 십분 발휘된다. 즉 쉽게 말해 책의 내용이 어렵지 않다. 그리고 단점은 그 장점과 동일하다. 어렵지 않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이 책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종종 인권이 덜 ‘정치화’돼야 한다는 요구가 들리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는 난센스다. 인권은 본래 정치적이다. 인권은 한 공동체 안에서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 또한 그 개인 · 집단이 다른 개인 · 집단, 특히 힘과 권위를 지닌 개인 · 집단과 맺는 관계를 짚어낸다. 그것이 국내 정치다. 국가들이 유엔에 인권이사회를 설립해 서로의 인권 현실을 토론한다면, 그것은 국제정치다. 국가들이 짐짓 자신의 경제적 · 외교적 이해관계를 제쳐두고 다른 나라의 인권정책에 대해 객관적이고 ‘비정치적’인 평가를 내놓기를 바라는 건 그야말로 헛된 꿈이다(p.232).</p>

 인권이 더 큰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대중의 상상력에 호소해야 한다. 그러자면 그들이 늘상 사용하는 어휘의 일부가 돼야 한다. 인권이 정말 대중 속에 자리잡으려면 먼저 이해되고 충분히 내면화돼야 한다. 이는 곧 인권의 원칙을 계속 토론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정제되고 변용된 원칙으로 그들의 필요와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인권 용어는 대중의 요구를 체계적으로 정식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떤 분쟁 상황을 인권 용어로 설명하면,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가 어떤 것인지 드러나고, 이 대립관계를 풀기 위한 적절한 절차를 내올 수 있다(p.229).</b></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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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의 주요 내용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권의 각 분야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적 · 정치적 권리(자유주의적 인권: 자유권)과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권리(사회주의적 인권: 사회권)의 각 분야들에서 정치일 수밖에 없는 인권이 어떠한 경합하에서 인준되고 보편적 가치로 성립되며, 그것이 실제로 구체적 현장에서 집행이 되는 정도와 되지 않는 부분에서의 난점들을 포착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이 책은 애초 용도가 ‘짧고 쉬운 교과서’를 지향하고 있다. 이 책의 독자는 1948년의 세계인권헌장이 어떠한 뿌리에서 출발했는지. 그리고 국제연합의 ‘이상주의’적 정치와 그 이후 UN이 인권을 어떻게 구체화하기 위해서 작동하였으며 그 사이에서 냉전의 장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그 장 안에서의 주요 행위자였던 미국, 소련, 제3세계 개도국 들이 어떠한 상호작용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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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다이다. 페미니스트들과 탈식민주의자, 그리고 좌파들이 어떤 쟁점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보편적 인권’에 대해 비판을 하는지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효적으로 인권은 개선되고 있다”라는 큰 방향에서의 계몽주의적이고 진화론적인 언사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우파들의 주장들에 대해서 근본적인 인식론 층위에서 ‘따박따박’ 비판하기 보다는 경우의 수를 들어 그들의 주장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맞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입증하거나, 혹은 그냥 그런대로 인정해놓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A가 상식이 되었다”라는 식의 언사를 구사한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계속적으로 인권과 한 몸인 정치에 개입하는 이상 세계는 평화롭고 좀 더 정의롭게 될 수 있다. 급진적 비판을 주장한 들, 결과적으로는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점진적 개선론’을 추동하는 방향으로 포섭될 것이다. 이를 영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점진주의’ 혹은 ‘보수주의’적 성향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계속 불편한 것은 아무래도 계속 ‘인류 보편’ 혹은 ‘인간성’이라는 말들을 너무나 쉽게 쓰는 인권 운동가들의 습관에 대한 거리낌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철저한 사회권을 옹호하는 사람 중 하나다.)

어쨌거나 급진적인 사유를 생각하거나, 지금에 있어 날선 근본적 비판이 필요하다고 굳건하게 신념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나 자신의 연구 결과가 그러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밍밍’하고, 한 편으로는 ‘복장’이 터지게 만드는 책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이 ‘인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환상'(보통 자유주의적 환상, 또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적 환상)을 깨버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시도일 것이다. (예컨대 교육권과 의료권의 항목을 보라.)